남북 접촉 왜 결렬됐나… ‘천안함·연평도 사과’ 문제가 결국 판 깨뜨린 듯
입력 2011-06-01 22:14
북한이 1일 남북비밀 접촉을 공개함에 따라 양측 간에 논의된 정상회담이 또 다시 결렬된 이유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접촉으로 현 정부 들어 남북이 정상회담을 의제로 머리를 맞댄 건 외부로 드러난 것만 두 차례다.
2009년 10월 첫 비밀 접촉은 북한의 과도한 지원 요구로 결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북측이 정상회담 대가로 대규모 식량 지원 등을 요구했다”면서 “우리 측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측이 북핵 포기를 전제로 달아 북측이 거부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결렬됐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돼 있었다고 한다. 북측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해법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더 안 좋아 보인다. 그만큼 결판 사유가 심각했다는 방증이다. 일단 북측의 폭로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 정부가 요구한 천안함·연평도 사과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됐을 것이란 예측이다. 자신들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우리 측이 고집하자, 아예 결렬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독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년 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다소 ‘전향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 제안을 내놓은 자리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전제조건으로 다시 한번 못 박았다는 데 있다. 당시 기자회견을 지켜본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이 너무 세게 발언한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이 대통령의 ‘쐐기’는 베이징에서 접촉을 하고 있던 북측 인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개연성이 크다. “남측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마음을 굳히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 내에는 북한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결렬 이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군부 강경파와 협상파 사이에 천안함·연평도 사건 처리에 이견이 있었고, ‘베를린 선언’을 빌미로 강경파가 협상파를 제압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얼굴 사진을 표적지로 사용한 일부 예비군 훈련이 군부 강경파를 자극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지난달 북·중 정상회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체제 보장과 경제 협력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목맬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