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은 靑 “일일이 대응 안해”

입력 2011-06-02 01:02

청와대는 북한의 ‘폭로’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북한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일 오후 남북 물밑 접촉 사실을 자세하게 밝히자 청와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틀전(30일) 북한이 우리 측과 앞으로 상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처럼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칠 줄을 몰랐다는 반응도 나왔다. 외교안보라인 참모들은 일제히 전화기를 끈 채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긴급 외교안보 대책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2시간의 회의 끝에 ‘청와대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청와대는 박정하 춘추관장을 통해 “정부 입장은 통일부가 밝힐 것”이라고만 브리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 실장으로부터 대책회의 결과를 보고 받았지만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 정리는 북한의 잦은 도발과 좌충우돌식 입장 변화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이명박 정부 들어 ‘대화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수시로 했다”며 “북한의 중구난방식 주장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 주장에 대해 “왜곡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들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얘기들이 있는데, 정상회담을 구걸했다는 식의 얘기는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폭로로 정부와 청와대 입장이 난처해진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정부가 부인으로 일관하던 ‘남북 비밀 접촉설’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2009년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접촉 이후 ‘유의미한 남북 접촉’은 없었다고 강조해 왔다. ‘남북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언론보도나 관측이 나올 때 마다 청와대와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북한이 4월과 5월 접촉을 공개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은 빛이 바래졌다. 남북 비공개 접촉에는 특히 보안이 요구되긴 하지만 ‘투명한 남북 대화’를 강조해왔던 청와대와 정부로서는 신뢰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남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