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폭로에 담긴 메시지는… 南 대북기조 흔들기 '노림수'

입력 2011-06-02 01:06

북한이 1일 남북 물밑접촉 내용을 ‘폭로’한 데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표면적으로 북한은 이명박 정부와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모습이다. 그간 대북 접촉을 해 왔던 우리 외교안보 라인 당국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남측 당국자들이) 돈봉투를 건넸다’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물론 다른 국가와의 외교관례에서 찾아보기 힘든 극히 이례적인 조치다. 남북 접촉의 판을 깨고 현 남한 정부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진정한 속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번 국방위 대변인 답변을 ‘평양의 최후통첩’이라고 주장했다. 대화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정세의 긍정적인 발전을 바라고 있음은 명백하다”면서 “이명박 정권이 대북 대결정책을 완전 포기한다면 혹시나 구원의 손길이 뻗쳐올 수도 있겠다”고 여지를 뒀다. 이명박 정권에 대북 원칙론을 폐기하고, 백기투항하고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남갈등을 노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돈봉투 논란’은 남한 정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소재다. 이는 특히 과거 김대중 정부 때 정상회담 대가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야권이 현 정권을 공격할 빌미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가 부인하더라도 한동안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북측이 판단했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북한과 ‘거래’를 하려 했다는 정황은 보수 진영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대북 강경 원칙을 내세우던 현 정권마저 물밑에서는 원칙론을 접은 만큼 대북 유화책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남한 국민에게 선전하는 효과도 노렸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도 겨냥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남한이 대내적으로는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뒤로는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등 이중플레이를 해 신뢰할 만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이들 국가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북·미 대화와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꼭 거쳐야 한다고 합의를 했는데, 이 부분에 균열을 가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