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원칙론’ 공언해왔는데… 靑·정부, 北 주장에 당혹감
입력 2011-06-01 18:32
청와대와 정부는 북한의 무차별적 ‘폭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일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하자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참모들은 전화기를 끈 채 대책회의를 계속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2009년 10월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접촉 이후 ‘유의미한 남북 접촉’은 없었다고 설명해 왔다. 당시 싱가포르 접촉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구체적 조건까지 논의됐으나 북한이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면서 무산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지난해 3월 천안함 사태와 11월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일각에서 ‘최근에도 남북 간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청와대와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소설”이라고 일축해 왔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남북 간 접촉은 보안을 유지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 간 비밀접촉 내용을 상세히 공개해 버렸다. 북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와 정부가 그동안 공언해 왔던 대북 원칙론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금까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와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고수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년 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당시에도 두 가지 전제조건을 강조했다. 북한의 사과와 비핵화 조치 없이는 어떤 남북대화도 어렵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 주장대로라면 청와대와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대북 원칙론을 유지하면서 물밑에서는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접촉을 지속해 왔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물론 우리 정부가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했다는 표현은 선뜻 믿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 폭로로 현 정권의 대북 원칙이 상당 부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많다.
다만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각종 공·사석에서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여러 차례 표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민주평통 자문회의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멀어졌다가도 좋아질 기회가 있다. 또한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이 대통령이 남북 비밀접촉 보고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감을 무의식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