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권도엽 장관의 고민

입력 2011-06-01 21:32


2007년 말 담보대출을 2억원 받아 수도권에 5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던 직장인 A씨. 매월 80만∼90만원 이자가 부담이었지만 그래도 더 오를 것 같아 무작정 일을 저질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됐고, 2009년부터 아파트 값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강남부자들은 부동산은 끝났다고 보고 오래전에 집을 팔아 이익을 실현했다는 소문에 더욱 초조했다. A씨의 아파트 시세는 4억원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요즘엔 매수가 끊겨 3억5000만원에도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린다. 월급쟁이가 저축으로는 모으기 힘든 1억5000만원 이상이 3∼4년 사이에 공중에 떠버렸다. 요즘은 월세 100만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셈 치고 포기했다.

서울 강북에 사는 직장인 B씨. 2007년 집을 살까 고민하다 대출이 부담돼 1억8000만원짜리 아파트 전세로 들어갔다. 2009년 집주인이 전세금을 2000만원 올려달라고 했다. 차라리 집을 살까 고민하다 부동산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참았다. 다시 계약기간이 끝난 지난 3월. 주변 아파트 값은 고점 대비 5000만원 이상 떨어져 있었다. 전셋값은 폭등했다. 집을 살까 다시 고심했다. 그러나 지금 집 사는 건 미친 짓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다시 전세를 택했다. B씨는 만약 2007년에 2억 가까이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다면 어땠을까 돌이켜본다. 4년간 대출이자만 약 4000만원, 집값 하락분까지 계산하면 최소 1억원은 손해를 봤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들리는 부동산 ‘뒷담화’를 2가지 사례로 재정리해 봤다. 한쪽은 쪽박을 찰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한쪽은 ‘더 안떨어지나’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상황이다. 국민 전체로 보면 주택시장은 한쪽이 웃을 때 다른 쪽은 억장이 무너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지난 정부에서 집값이 폭등할 때 주택 소유자들은 ‘왜 집 있는 사람만 괴롭히느냐’고 짜증을 내고, 무주택자는 ‘정부가 집값도 못 잡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요즘엔 처지가 정반대다. 지방은 덜하지만 수도권 주택 소유자들은 아우성이다. ‘집 있는 거지’란 우스갯소리도 오래됐다. 집 없는 서민들은 전세난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강남보다 여당 성향이 더 강하다던 분당에서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당선된 건 집값 하락과 전셋값 폭등 때문이란 해석도 무리가 아니다. 내년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할 것이란 관측에 여권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신임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도 처지가 딱하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핵심 부동산 대책을 만들었다. 그는 2005년 종합부동산세 등 이른바 ‘세금폭탄’으로 보수층의 반발을 샀던 8·31 대책의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다. 그 공로로 다음해 황조근정훈장도 받았다.

당시 강남권의 고가 아파트 소유자들은 그 대책 때문에 참여정부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부동산 거품이 꺼졌고, 집 있는 사람들은 다시 정부를 원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한때 부동산을 잡기 위해 애썼던 권 장관은 이제 정반대로 부동산을 살려야 할 처지다. 권 장관은 1일 취임식 후 재개발·재건축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거론했다. 전셋값 폭등과 집값 하락을 모두 해결해 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미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 권 장관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보금자리 주택은 높은 분양가 때문에 ‘서민 보금자리’로서 의미를 잃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건설업계와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숨통만 터줄 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택대출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도 손대기 쉽지 않다. 특히 부동산 가격 등락은 계층갈등을 유발하는 휘발성을 갖고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정부는 집값이 올라가면 서민에게 욕먹고, 떨어지면 집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게 돼 있다. 주택전문가인 권 장관은 모두에게 칭찬받는 해법을 갖고 있을까.

노석철 산업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