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진홍] “동지는 없고 동업자들뿐이다”
입력 2011-06-01 17:55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동업자들… MB, 행복하게 퇴임할 수 있을지”
동지(同志)와 동업자(同業者). 요즘 여권 핵심에서 나온 말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전 최고위원이 먼저 꺼냈다. 홍 전 최고위원은 최근 “이 정부에는 정치적 동지는 없고, 동업자만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에 동지는 없고, 동업자만 있다는 외부 평가를 뼈아프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동업자만 있다’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 홍 전 최고위원은 ‘여권 전체’를 거론했으나, 임 실장은 ‘청와대’로 한정했다. 두 사람의 상이한 직책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 사건 등 임기 4년차에 현 정권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일들이 잇따르는 원인 중 하나가 ‘동업자’에 있다는 진단은 똑같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동지는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음. 또는 그런 사람’. 동업자는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 또는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는 사람’.
얼핏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정치적 의미를 가미하면 차이가 뚜렷해질 듯하다. 동지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결같은 자세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열정을 쏟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동업자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나 국가발전에 헌신하기보다 현 정부 임기 내에 정권의 후광을 빌어 호가호위하거나 입신양명만 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동업자가 많을수록 국정운영이 힘들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욕을 얻어먹든 말든 한자리 꿰차거나 한건 챙기려는 동업자의 예는 적지 않다. 가깝게는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의 반발에도 대통령직 인수위 상임자문위원과 BBK사건 변호인이었던 그를 감사위원 자리에 앉혔다. 은진수는 자신으로 인해 대통령이 고충을 감내한 만큼 최소한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처신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과의 친분과 감사원 감사위원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데 일조했다.
지저분한 사례는 또 있다. 이른바 ‘함바 게이트’.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팀장이 이 사건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했다.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인사가 건설현장 근로자들을 위한 식당 운영권에까지 개입한 것이다.
지난해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포회’ 논란도 호가호위하려는 ‘여우들’이 주역이다. 47억여원의 금품을 받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이 대통령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도 마찬가지다. 집권 초기에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원을 받은 대통령 친인척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악취 나는 범법행위로 표면에 드러난 경우다.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권력 주변에 기웃거리다 사익(私益)을 이미 챙겼거나 앞으로 챙기려는 동업자들은 과연 없을까. 모르긴 해도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현 정부 임기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혈안인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잡음도 커질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괜찮을까. 청와대는 은진수 사건을 계기로 근무자세를 다잡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에 동업자만 있다는 평가를 뼈아프게 받아들이자”는 임 실장 발언을 곱씹어보면 청와대 참모들 중에도 동업자가 상당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동지로 위장한 ‘먹튀’ 동업자들은 예전 정부에도 있었다. 은진수 사건이 터지자 이 대통령이 격노한 것처럼 역대 대통령들도 그때마다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볼 때, 레임덕은 바로 이런 파렴치한 동업자들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권력에 접근하는 마음자세부터 순수하지 못한 동업자가 하루아침에 동지가 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동지들을 양산할 시간도 별로 없다. “행복한 퇴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다짐보다 “이 대통령은 더욱 외로워질 것”이라는 홍 전 최고위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김진홍 편집국 부국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