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수용소 ‘혜원·규원자매 구명운동’ 이지혜 국제변호사 “한국교회는 왜 침묵하나요”
입력 2011-06-01 19:13
국제변호사 이지혜(29·부산 예양교회)씨는 1982년생이다. 분단세대도 아니고 진한 최루탄 냄새를 맡은 이념세대도 아니다. 하지만 이씨는 심지가 굳은 ‘북한인권 운동가’로 통한다.
그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혜원·규원 자매 구명운동’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김정일을 반인륜 범죄 용의자로 제소하는 데도 한몫했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그는 ‘탈북동포돕기 사랑과 자유를 위한 음악회’ 준비로 분주했다.
-‘혜원·규원 자매 구명운동’은 무엇인가.
“이들 자매는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북송된 오길남(69) 박사의 두 딸 혜원(35)과 규원(33)을 말한다. 오씨는 1980년대 독일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활동하다 우리 정부로부터 입국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때 북한공작원이 접근, 그에게 북한의 교수직을 제안했다. 오씨는 유혹에 넘어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85년 북한으로 갔다. 이후 북한에서 대남방송요원으로 활동하던 오씨는 북한의 실체를 깨닫고 86년 탈출했지만 그의 가족은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다. 오씨의 한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구명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구명운동에 진척은 있나.
“현재 ‘혜원·규원을 함께 구해내요!’라는 문구가 적힌 엽서를 관심 있는 사람에게 1000원에 파는 등의 방법으로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시작했는데 이미 500여명이 엽서를 통해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1000명의 후원자가 모이면 기자회견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엽서를 북한 당국에 전달하고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풀어 달라고 촉구할 작정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한번 해 보겠다는 게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과거 서독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동독의 정치범 석방운동을 벌여 석방시킨 사례가 있다. 또 일본에서도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구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다. 물론 요코다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납치당한 7명은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직접 나설 수 없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북한인권 운동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슈를 만들고 캠페인으로 발전시킨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을 시민에게 전달하고 전시회 등을 계속 열겠다.”
-북한인권운동은 언제부터.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재학시절이다. 북한인권법학회(LANK)에 가입했는데 그때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처음 알게 됐다.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을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가 숱한 고문과 핍박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음이 아팠다. 사진과 동영상을 봤는데 며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끔찍했다. 탈북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듣다보니 ‘아, 내가 가야할 길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북한인권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학회 세미나 등을 통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반인도 범죄에 대해 김정일을 ICC에 기소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으로 수용소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나 주위의 반응은.
“부모님이 좀 서운해하셨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로펌이나 대기업에 취직할 줄 알았는데 북한인권운동을 한다고 하니 실망하신 눈치셨다. 하지만 선택을 존중해 주셨고 지금은 누구보다 많은 응원을 해 주신다. 지인들은 격려해 주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신기해하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에게 인권유린 사례와 북한체제의 실제, 그리고 수용소의 해체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비록 월세방에 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 무척 행복하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해 왔나.
“2009년 6월 미국 워싱턴 DC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곧바로 북한민주화운동본부라는 비정부기구(NGO)에서 1년 넘게 일했다. 월급이 100만원에 불과했지만 그곳에서 ‘북한 반(反)인도 범죄 피해자 100인 탄원서’를 발표했다. 또 ICC에 김정일을 반인륜 범죄 용의자로 제소하는 데 기초 작업을 수행했다. 2010년 11월 ICC는 ‘범죄 사실은 인정되지만 관할권이 없다’고 결정했지만, 김정일의 악행을 알린 효과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ICC는 현재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그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높아졌다).”
-현재 국회인권포럼과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간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렇다. 좀 더 적극적인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싶었다. 지난 2월부터 여의도 국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를 도와 북한인권 세미나, 간담회 등을 시민단체와 연계해 마련하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북한인권법 국회통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탈북자의 북한 강제송환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중국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다.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북한 인권에 대해서만은 소신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이라고 들었다.
“모태신앙이다. 어머니가 부산 예양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신다. 교회 3개를 개척한 분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많이 본 데다, 불쌍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함께 살고, 교회랑 집이 붙어 있어 내심 신앙을 멀리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대학 1학년 때 기도 가운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하나님 음성을 3번이나 듣게 됐다. 결국 두 손 들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아침, 저녁에 큐티(경건의 시간)를 하고 성경말씀에 따라 살고 있다.”
이씨의 좌우명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자가 되자라는 미가서 6장 8절 말씀”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은 만만치 않다. 탈북자와 탈북단체, 정부관계자를 수시로 만나야 하고 신변의 위협을 받는 등 애로가 적지 않다. 그는 “한국교회와 사회가 왜 북한동포의 인권에 침묵하고 있는지 안타깝다”며 크리스천의 행동하는 신앙을 촉구했다.
글 유영대 기자·사진 이동희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