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헤리티지’ 리더 김효식씨 ‘나는 찬양 가수다’

입력 2011-06-01 19:19


오른발을 내딛었다. 딛고 선 곳은 무대였다. 정확히 500명이 숨죽인 채 그곳을 주시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후들거리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참…. 그렇게 많은 무대에 섰는데….’

지난달 9일 MBC TV ‘나는 가수다’의 무대. 심호흡만 수차례.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팀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허설 때 서기로 했던 자리에 시선을 꽂았다. 자석의 N극에 S극이 반응하듯 경직된 몸은 서서히 움직였다. 눈을 감고 읊조렸다. ‘하나님 아버지….’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기운에 모든 이가 압도됐다. 그의 조그만 동작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들, 눈을 깜빡이는 찰나조차 아까워했다.

전주가 흐르고 속삭이는 듯한 음성으로 임재범의 노래가 시작됐다. ‘여러분’. 임재범의 뒤에 서 있던 다섯 명의 가인, ‘헤리티지’도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1절이 끝난 뒤 가운데 서 있던 그룹의 리더 김효식(32)의 수신호. ‘자, 이제 시작이다.’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처음 노래했던 그날

그 순간 김효식은 처음 관객 앞에 섰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1998년 어느 여름날, 서울 정동문화예술극장. ‘나는 가수다’처럼 꽉 들어찬 관객. 서울 창신동 동신교회 아마추어 찬양팀 ‘믿음의유산(Heritage of Faith)’의 첫 공연이었다.

형들의 노래가 끝나고 막내였던 그의 차례. 그저 노래 부르는 게 행복했던 어린 효식은 알 켈리의 노래를 멋지게 소화했다. 마지막 소절이 끝날 무렵 모든 관객은 ‘노래 잘하는 멋진 교회오빠’를 향해 손이 찢어져라 박수를 보냈다. 온몸의 솜털이 쭈뼛쭈뼛 섰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과 처음 눈이 맞았다. 동신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기타앓이’에 빠졌다. “찬양 인도자를 ‘기타맨’이라 불렀죠. 중등부에 단 2명뿐. ‘기타맨’이 되기 위해 수두룩한 밤을 새웠습니다.”

매일 같이 기타 줄을 튕기며 노래를 불렀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까지도 그는 스스로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음악이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불교재단이던 모교 유일의 기독교 동아리, ‘시나브로 중창단’이었다.

“1학년 1학기 초 쉬는 시간에 선배 7명이 교실에 들어왔어요. 다른 말 없이 노래로 동아리 소개를 하더군요. 찬송가 2곡을 아카펠라로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노래하고 싶다’는 말이 입술 새로 빠져나왔어요. 오디션에 합격한 뒤 선배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신 목소리로

대학 입학 이후 당시 창단된 ‘믿음의유산’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형, 누나들과 입을 맞춰 영화 ‘시스터 액트’의 ‘오! 해피데이’ ‘주의 은혜로’를 부르는 게 재밌었을 뿐이었죠.”

찬양사역에 여념이 없던 ‘믿음의유산’에 CCM(복음성가) 음반 제의가 들어온 건 2003년.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음반 제작에 들어갔다.

“많은 분들이 저와 제 친구들이 노래하는 걸 보러 오시는 것도 신기했는데 음반까지 낸다니 믿기지 않았어요. 우리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서 우리 노래로 위로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인지요.”

팀원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매일 5시간 이상의 노래 연습, 끊임없는 공연에도 지치는 이 없었다. 모든 게 감사하고 기쁠 뿐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엔 나날이 깊이와 힘이 더해졌다.

쉽지 않은 도전

“헤리티지의 전신 믿음의유산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일반 대중음악을 목표로 삼았어요.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대중음악이죠.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 안에서만 나눌 게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세상 사람과 나누자는 거였죠.”

자신 있었다. 매달렸다. 이름부터 손을 댔다. 믿음의유산에서 헤리티지로. 좀 더 깔끔하고, 기억이 잘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구성원도 5명으로 굳어졌다. 2006년 헤리티지의 첫 일반 앨범이 세상에 나왔다.

실력은 출중했다.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쉬운 성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험준한 산이 앞을 막았다. 특히 김효식은 아버지의 마음을 여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셨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반대가 많으셨죠. 아버지에게 음악은 그저 ‘취미’에 불과했으니까요.”

음반에 대한 반응도 기대와 달랐다. 빠른 비트의 댄스곡에 귀를 내준 대중은 이들의 블랙가스펠에 데면데면했다. 소속사는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라 타사와 계약을 할 수도, 마음껏 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은데 노래할 곳이 없는 상황. 최악이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마음을 먹었다.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고 두드렸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연습실에서 음악예배를 드린 것도 이때부터였다.

2∼3년 인고의 과정을 거친 뒤 지난해에야 새로운 기획사를 찾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미니앨범도 제작했다.

“‘1집부터 대박이 났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봐요. 분명 더 힘든 시기를 겪었을 겁니다. 교만해졌을 거고요. 하나님이 일부러 ‘뺑뺑이’를 돌리셨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졌으니까요. 오히려 최고의 시간이었던 거죠.”

나는 가수다, 새 출발

‘여러분’을 가스펠 스타일로 편곡한 작곡가 하광훈의 긴급호출로 헤리티지는 임재범과 인연을 맺었다. ‘나가수’ 무대에서 임재범과 입을 모아 부른 그 가사. 김효식에겐 커다란 울림이었다.

“왜 임재범씨가 이번에 그 노래를 불렀고, 저희가 참여하게 됐을까. 임재범씨가 ‘누군가 내게 이 노래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감동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노래. 그게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임무임을 다시 깨달았다. 준비 과정에서 몸이 좋지 않았던 임재범을 위해 손을 잡고 중보기도를 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의미다. ‘여러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최고의 상태로 노래하기를, 그 노래로 감동을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2007년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고의 R&B, 소울 노래 부문’을 수상한 그들이 추구하는 블랙가스펠 장르,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에선 여전히 ‘무한’ 도전이다.

“기대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으면 하는 거죠. 갈 길은 멀지만 열심히 뛸 겁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이동희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