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현길] 축구계 ‘환골탈태’ 계기로…

입력 2011-05-31 18:38

정몽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는 지난 1월 27일 취임식에서 “K리그를 우리나라의 가장 큰 흥행 리그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 총재는 취임 직후 지난 몇 년간 K리그를 괴롭혔던 타이틀 스폰서 문제를 해결하며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승부조작 문제에서 보듯 K리그는 외형적 성장에 앞서 안에서부터 곪아가고 있었다. 정몽규 체제 이전부터의 문제이고 일부 선수에 국한된 일이라고 하나 프로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이 주는 파괴력을 감안할 때 그간 연맹을 비롯한 축구계가 이 문제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전직 국가대표 출신 축구인에 따르면 1980∼90년대 동남아 국가 등에서 열리는 A매치에 참가할 때 현지에서 대표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해 오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실제 승부조작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하지만 승부조작이 남의 나라 문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2008년에는 중국 도박사와 관련된 승부조작 사건이 K3(현 챌린저스리그)에서 터져 문제가 됐다. 이번에는 상위 리그인 K리그에서 국내 브로커와 선수가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승부조작이 점차 한국 축구계 깊숙이 침투해온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맹과 대한축구협회 등 축구계는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5일 승부조작이 보도된 후에는 보여주기식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연맹은 31일부터 1박2일간 K리그 16개 구단 선수단이 참가하는 워크숍을 열어 불법행위 연루 의혹이 제기되는 선수가 통화 내역이나 계좌 입출금 내역 등 개인 정보를 연맹에 제공한다는 각서를 받기로 했다. 수사권이 없는 연맹에서 낸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실효성이다.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선수가 성실하게 신고한다고 보기도 힘들고, 대포폰이나 대포통장 등을 이용하면 적발이 어렵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초기 터진 ‘블랙삭스 스캔들’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지만 메이저리그가 승부조작에서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축구계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승부조작이 뿌리내릴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체육부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