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 박명수 부회장 “거짓으로 뛰던 그 순간 행복했는지 묻고 싶다”

입력 2011-05-31 20:13


한 살 때 열병으로 시력을 잃은 박명수(35·사진)씨는 시각장애인 축구단 ‘소리를 차는 사람들’의 부회장이다. 지난해까지 국가대표 시각장애인 축구 선수로 뛰었다. 31일 오후 서울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만난 박씨에게 최근 불거진 프로축구의 승부조작 사건 얘기를 꺼냈다. 첫 마디는 “화가 난다”였다.

장애인 축구장엔 관중이 별로 없다. 있다 해도 눈으로 볼 수 없다. 귀로 들을 뿐이다. 박씨는 “시각장애인 축구 선수는 몇 안 되는 관중의 응원소리에도 더 힘을 내고 이를 악물고 뛴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축구 선수에게는 그들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찾는 수만명의 팬이 있는데 세상에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느냐”면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때 그라운드에서 뛰던 그 순간이 행복했는지 묻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장애인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전용구장도 건립됐다. 하지만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 선수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장애인 선수들은 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생업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로 차출돼도 일당 정도의 수당만 지급된다고 한다.

박씨는 “그래도 우리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자부심 하나로 그라운드를 누빈다”며 “생계 걱정 않고 좋아하는 축구를 원 없이 하면서 돈을 받는 프로축구 선수가 몇 천만원에 그 가치를 버리는 것은 다른 운동선수의 의욕과 자존심을 꺾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선수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박씨는 “운동장에서 땀 흘리고 소리 지르며 뛰다 보면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라며 “운동이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승부도 중요하다. 박씨는 “그라운드에 서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축구 선수나 장애인 선수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선수라면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벌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며 “그 땀의 대가는 결코 돈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쓰러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이번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축구 열기가 식게 될 것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국민들이 축구에 등을 돌리면 그렇지 않아도 소외된 우리 장애인 축구 선수들은 관심을 받기가 더욱 힘들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선수들이 눈으로 공을 보며 뛸 수 없기 때문에 구슬소리가 나는 공을 사용해 경기를 치른다. 또 안전을 위해 공을 잡은 선수는 “보이”라고 외치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경기 인원도 팀당 5명으로 일반 축구팀보다 적다. 다른 규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