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쫑이에게 전해줘
입력 2011-05-31 17:49
빗소리에 잠이 깼다. 그런데 옆에 애완견 쫑이가 내 머리를 긁어댄다. 눈을 감으려는데 녀석이 혀를 내밀고 돌며 안절부절못한다. 이번에는 내 어깨를 긁어댄다. 녀석의 발을 치우자 또 끙끙거린다. 그러기를 몇 차례. 알고 보니 녀석이 끙끙거리면 몇 초 후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개들은 천둥소리를 무서워한다더니. 나는 겁먹은 쫑이를 품에 안았다.
쫑이를 키운 후로 아이들의 말소리로 집 안에 생기가 돈다. 가만히 보니 아이들은 나에게 할 말을 쫑이에게 하곤 한다. 밤늦게 온다더니 애간장을 태우고 다음날 들어온 아들. 오기만 하면 혼쭐을 내주려고 하는데 쫑이는 자기 키만큼 몇 번이나 뛰어오르며 꼬리를 친다. “쫑아, 형아가 어제 술 취해서 못 왔지?” 하면서 쫑이를 쓰다듬는다.
아들은 쫑이에게 사과를 하지만 그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임을 왜 모르랴. 주말이면 딸도 모처럼 청소며 세탁을 도와주면 어떠랴. “쫑아, 우리 운동할까?” 하고는 벌써 현관문 밖에 서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면서 쫑이에게 알레르기가 적다는 감자 섞은 오리, 수제 쇠고기 육포를 배달시키질 않나. 그런데도 쫑이만 가운데 끼면 일껏 솟았던 화가 사그라들며 나도 몰래 웃음이 나오니 내가 이렇게 휴머니티한 사람이었나 싶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잠든 사이 쫑이가 그만 안경의 귀를 뜯어 버렸다. 큰돈을 들였는데. 안경점에 가서 안경 귀만 바꿀 수 없느냐고 물었다. 희귀한 제품이라 어렵다면서 “개가 사모님을 엄청 좋아하나 봐요” 한다. 안경 귀에 사람 체취가 가장 많이 남는 데라 그곳을 뜯겨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좋아한다는데 그깟 안경이 대수랴. 사랑의 힘에 이끌려 나는 신용카드를 날렵하게 올려놓는다.
쫑이는 이제 오줌을 누면 과자를 달라고 내 무릎을 긁는다. 아침에 식구들이 출근 준비로 부산하면 눈가에 물기가 맺힌다. 현관에서 “다녀올게” 해도 시무룩해서 나오지 않는다. 집에 들렀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가면 거실 한가운데다 오줌이나 똥을 퍼질러놓는다. 이런 짓하고 어디 갔나 하고 부르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혼자 보기 아까워 나는 방바닥을 구르며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감정은 인간들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나에게 내리는 반성이요, 모든 피조물에 대해 사랑 결핍을 가지고 산 후회요 뒤늦은 깨달음이 들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면 방송이 나온다. 한번은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하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쫑이는 곧 누군가 올 줄 알고 현관 앞에 가 앉았다. 그런데 사람은 오지 않고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 못 들르고 나가요. 쫑이에게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줘” 딸의 목소리였다. 녀석은 분명 동거인에 올려있지 않을 텐데. 가족들은 이미 쫑이가 개라는 걸 잊어버린 것 같다.
천둥소리가 들릴 때마다 쫑이를 위로해주는 건 개의 언어나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녀석을 아껴주는 따스한 눈빛으로 충분할 것이다. 쫑이는 금세 그 눈빛을 알아채고 충성을 약속한다며 분명코 능글맞게 몸을 뒤집을 것이다.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