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6월 1일] 관용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입력 2011-05-31 17:52


찬송: ‘주 예수 크신 사랑’ 205장 (통 236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빌립보서 4장 4~7절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가 쓴 ‘제국의 미래’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초강대국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책을 보며 역사 속 초강대국의 흥망성쇠를 하나씩 짚다보니 그 속에서 ‘관용’이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제패하려면 최고의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충성을 얻어야 하는데 그 최선의 방법이 관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용 정신은 인재등용에서 잘 나타납니다. 저자는 본문 속에서 “인종·종교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기에 로마, 몽골, 미국이 동시대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관용 없이는 성공적인 미래를 건설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지만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했고, 때로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 유랑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핍박하는 사람을 향해 적의를 품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관용의 참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엄청난 피해를 입혔음에도 그 사람을 품는 넓은 마음’이 바로 관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 같은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관용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보이신 관용의 극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지르던 무자비한 폭도들이 자신을 모르고 하는 행동임을 알고 오히려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관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긍휼이 필요합니다. 긍휼이 있어야 마음으로 상대를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긍휼을 “온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우리의 마음을 넓게 확장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성경에서 긍휼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그의 마음에 합한 것 하나 없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삶을 한번 되돌아봅시다. 삶에서 얼마나 많은 용서가 있었습니까? 삶 속에 용서가 없으면 자칫 하나님 앞에 돌아온 탕자인 우리는 도리어 탕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큰아들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큰 용서를 받았던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다시 실수할 수 있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타인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기도 : 사랑이신 하나님, 죄 많은 우리를 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관용과 용서가 가득하여 사랑이신 주님 닮은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도원욱 목사(한성교회)

◇6월부터 가정예배를 집필하는 도원욱 목사는 서울 한성교회 담임목사다. 영남대 경영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저서로는 ‘내 영혼의 행복 비타민’(브니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