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5-31 17:57


타락을 변명하는 덫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사람이 자기 타락을 대변하려는 자다. 교회에서도 어떤 일을 놓고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이러고저러고 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배 생활, 감사 생활, 기도 생활, 전도 생활을 왜 제대로 안 하냐고 하면 전부 환경 탓, 조건 탓으로 돌리고 자기는 슬그머니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고는 모든 사람이 자기 타락과 자기 잘못을 남들이 이해해 주기를 원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 변명만 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겁한 행동이다. 내가 내 사정을 제일 잘 아는데 누구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고, 누구에게 나를 변호해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남에게는 관용을 베풀지라도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엄격하여 자신의 타락과 잘못을 용서할 수 없어야 한다. 모질게 자신을 다그쳐야 그 버릇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저는 잘못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고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하나님도 이해하시잖아요.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환경 아닙니까?” 하고 아무리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게 심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절대 하나님 앞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자기 자신이 잘못하고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돈과 명예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문제는 그럴 수 없다. 참과 진실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배에 안 나왔는데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영적으로 주린 것을 못 느끼고, 하나님 앞에 죄송함도 없다면 큰 문제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나의 영적 생활을 도와주시려고 적절한 때마다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살살 피해 다니는 것은 아주 미련한 행동이다. 그렇게 핑계를 댈 수밖에 없는 논리와 조건을 만드는 자, 생각을 조작하는 자가 바로 사단의 역사, 마귀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죄를 짓고 타락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이러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직 육신이 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모르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살면서도 “왜 이렇게 살아!” 하고 자신을 야단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더 걱정되어서 권면이라도 하면 “꼭 그렇게 믿어야 됩니까?”라고 하니 이런 사람과는 상대할 수가 없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아무리 죽지 말라고 말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자신의 잘못과 타락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변명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릎 꿇고 땅을 치며 울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끝까지 자신의 타락에 핑계를 대고 변명으로 위로를 받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잘못했다고 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마귀 역사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합법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 온다. 그러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나만 망쳐 놓는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그 덫에 걸리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윤석전 연세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