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101)
입력 2011-05-30 16:17
익모초 주일(益母草 主日)
나는 토요일 마다 교우들과 춘천 근교의 산을 걷는다. 목사가 그 바쁜 토요일에 무슨 산놀이냐고 하실 이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화요일 저녁이면 설교 원고를 교회 홈페이지에 싣는다. 그러고는 토요일 아침까지 적어도 스무 번은 읽고 또 읽어서 육화를 시킨다. 그런 다음에 남자 교우들을 중심으로 교회 중직들과 멀고 가까운 산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다고 멀리 산행을 나서는 것도 아니라서, 서너 너덧 시간 걷고 나서는 점심을 먹고 모두들 교회로 돌아와 교회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한다. 그러면 일부러 교우들을 부르지 않아도 교회 안팎의 일들이 준비되는 것이다.
요즘은 날이 금세 밝기 때문에 아침 8시면 모인다. 새벽 4시면 포곡조(뻐꾸기)가 울어대니 바지런을 떨지 않으려고 해도 않을 수 없다. 오늘은 화천 오음리를 넘는 배후령 고개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마적산으로 내려올 작정이었다. 그러면 소양강댐 밑 막국수집들이 모여 있는 언저리가 된다. 그러나 벌써 초여름 날씨라 긴 길을 걷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에 ‘샘밭 올레길’을 걸었다. ‘샘밭 올레길’은 우리가 붙인 이름인데, 아랫 샘밭에서 수레관 쪽으로 난 긴 둑길을 따라 걷다가 야트막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걷고 싶은 대로 걷다가 나오면 되는 그런 아담한 숲길이다. 오늘은 모두들 맨발로 걸었다. 땅바닥이 발을 톡톡 쏠 것 같지만 푹신하기 그지없었다. 걸으면서 붉나무 새 순, 소나무 순, 칡 순, 싸리나무 순, 아카시아 꽃 등을 뜯어 씹었다. 달짝지근한 봄기운이 온 몸에 퍼졌다.
산을 내려와 둑길을 따라 걷다가 쑥 대궁과 함께 무성하게 자라는 익모초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 오월 단오가 되면 아버지는 들에 나가 쑥이나 익모초를 입으로 끊어 오라고 하셨었다. 그러는 동안에 쓴 맛을 입에 묻히라는 뜻이 있다는 건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 한여름, 더위를 먹어 비실비실할 때 어머니는 익모초를 으깨어 짠, 구토가 일어날 만큼 쓴 익모초 물을 한 대접 마시게 하셨다. 그러면 거뜬하게 한여름을 났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밭둑에 앉아 자라기 시작하는 익모초를 뜯었다.
장로님댁에서 익모초 물 한 컵씩을 먹다가, 단오가 지난 그 다음 주일에 모든 교우들에게 익모초 한잔씩을 대접하자는 제안을 했다. 의당 단오에는 익모초나 쑥을 먹어야 했던 전례도 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햇볕 뜨거운 광야로 나가기 전에 쓴 나물과 맹맹한 떡을 먹고 담즙 분비를 위한 준비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교우들의 건강한 여름 나기를 위해 ‘익모초 주일(益母草 主日)’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과 비슷하다 하겠다. 6월 둘째 주일이 될 텐데, 그 날은 익모초 짠 물 한 컵씩은 물론이려니와, 식당의 반찬도 민들레 뿌리, 익모초 잎 튀긴 것, 산 미나리 같은 쓴 맛이 나는 것들로 반찬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일절 단맛이 나는 재료를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익모초는 그야말로 여자들에게 좋은 풀이다. 더할 익(益), 어머니 모(母), 풀 초(草)아닌가? 혈압을 안정되게 하고, 부인들의 혈액순환을 돕고, 몸을 가볍게 한다고 ‘동의보감’에 있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쓴 나물을 먹은 뜻, 우리 백성들이 대대로 단오 때마다 익모초와 쑥을 먹었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익모초 주일’은 아주 멋진 주일이 될 것 같다. 그 많은 익모초를 어디서 구하냐고 했더니 조은구 장로가 걱정 말란다. 산처럼 뜯어다가 어린아이에서 어른교우들에게 이르기까지 ‘쓴 맛’을 보여 주시겠단다. 우리는 6월 둘째 주일을 ‘익모초 주일’로 지내고자 한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어라.”(출 12:8)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