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음의 결단
입력 2011-05-30 18:02
여호수아 2장 1∼24절
모세의 뒤를 이어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앞에 견고한 성 여리고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라합이라는 기생을 들어서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데는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자기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지만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3∼7절).
라합은 지붕 위에서 이스라엘의 정탐꾼과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출애굽 사건과 요단 동편의 두 왕 시혼과 옥이 망한 사실을 라합은 주의 깊게 듣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들을 들을 때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라합이 이런 믿음을 가진 것은 어떤 영적 체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사건들을 유심히 듣고 귀를 기울이며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8∼11절).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루터, 칼뱅, 웨슬리 이후 최고의 신학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초빙교수로 있을 때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마침 택시기사가 성경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기독교교리학을 집필하고 있던 바르트는 택시기사가 대견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성경을 아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신학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르트의 지적인 질문에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려운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모릅니다. 성경의 기적과 비논리적인 이야기들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약속의 증표요,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셨고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믿습니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바르트였습니다. 자신의 신학적인 오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르트는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이 아닌, 교회를 위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신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바르트는 교리학을 포기하고 교의학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체험 속에서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상고하며 들을 때 생깁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역사 속에 찾아오셔서 역사 가운데 일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부름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의 결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결단은 고귀한 신분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생 라합도, 택시기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라볼 때 결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믿지 아니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영혼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어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런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준연 목사(창원 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