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모래시계
입력 2011-05-29 18:01
봄을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여름이 성급히 다가온 것 같은 더위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쉬이 닳아 없어질 것 같지 않던 2011년의 반이 곧 사라지게 생겼다. 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쉬지 않고 빠져나간다. 시곗바늘처럼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모래알을 보며 연말이면 느꼈던 아쉬움과 조급함이 올해는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도 있을 때보다는 떠난 뒤에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시간도 흘러간 후에야 허비하며 놓쳐버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오죽하면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이런 묘비명을 썼겠는가. ‘우물쭈물하다 내 이리 될 줄 알았어!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빠르게 떠난다. 모든 일에 그 때를 놓치면 실패하기 십상인데 무심히 흐르고 떠나게 할 수는 없겠다. 시간관리는 곧 인생관리라고 하는데 농사도 연중 며칠 안 되는 씨 뿌리는 시기를 놓치면 망치는 것처럼 인생 농사도 잘 짓기 위해서는 씨 뿌릴 시기와 거둘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즈음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지는 않았는지, 불필요한 것을 지고 달리느라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사람에 따라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게 또는 부족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양이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음식 재료가 빠진 것이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온갖 재료와 양념으로도 맛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부족한 시간도 쪼개가며 혼신을 다해 열심히 살며 좋은 결실을 맺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심풀이로 시간을 때우며 시간 죽이기를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나님께서 하루하루를 선물로 주시며 남김없이 알차게 사용할 것을 권고하셨는데 ‘시간 죽이기’는 주신 분에 대한 배반일지도 모르겠다. 성경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로 그 시간까지 얹어주시는 것은 아닐는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감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빠르게 느껴진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상영됐던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에서는 괴상한 발명가가 스포츠카를 개조해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주인공인 고등학생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일방통행인 시간을 누군들 거슬러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모두는 각자의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다. 살아온 날만큼 쌓인 모래를 볼 수 있을 뿐 남은 모래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는 모래시계. 다만 쌓인 모래가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의 삶도 내일 반짝일 수 있도록 더 수고한다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세원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