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5-27 18:04
종말론과 윤리
시한부 종말론이 또 한 차례 미국사회를 강타했다. 지난 5월 21일 대규모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 했던 해롤드 캠핑의 예언이 빗나가면서 그를 추종하던 무리는 방향성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 종말론에 대한 논의는 한국 교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92년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일었던 이장림의 종말론 광풍 이후 20년 만의 재판(再版)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어떤 시한부 종말론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비성경적이고 편협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분명 종말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한 날짜에 대해선 굳게 침묵한다(마 24:36).
사실 기독교 신자는 종말론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신약의 가르침 자체가 종말론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설교의 일관된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임박한 종말과 초자연적 하나님 나라의 개입에 대한 것이다. 바울 서신 역시 종말론적인 기조가 뚜렷하고, 베드로 서신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요한 서신은 영적인 동시에 종말론적이다. 그렇지만 기독인은 성서에 기초한 종말론적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문자적 해석에 목을 맨 휴거 날짜 맞히기 소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종말론과 윤리 관계는 상극이다. 종말론은 역사의 마지막을 주시하므로 현세의 삶인 사회생활에 대해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편협한 종말론에 빠진 종파가 자주 상식을 벗어난 비역사적, 비윤리적 행태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 윤리는 역사 저편보다는 역사 지평 자체에 관심을 갖기에 종말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성서는 종말론과 윤리를 결코 분리시키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최고 선인 아가페에 기초한 현세적이며 종말론적인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종말론적 윤리 가운데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중간윤리(Interim Ethics)’가 있다. 그것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철저한 종말론’에 입각한 윤리이다.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짧은 현세에서 지켜나가야 할 잠정적 윤리이다. 세상 종말을 기대하는 자들을 위한 일종의 비상조치 윤리다. 여기서 윤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반면 ‘실현된 종말론’을 주창하는 도드(C. H. Dodd)는 하나님 나라를 미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 현재적인 경험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의 윤리를 종말에 맞춘 윤리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자들을 위한 윤리로 이해했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강조점을 둔다.
성서의 종말론적 윤리는 ‘아직 아님’과 ‘이미’ 사이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변증법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진정한 기독인은 주의 재림이 언제든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현세에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올곧이 살아간다. ‘종말이 곧 닥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르틴 루터의 굳은 의지처럼, 인간은 주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현재의 실현과 미래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사도 베드로는 종말론적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세상 한 복판에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의 삶을 사는 것, 뜨겁게 사랑하는 것,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 선한 청지기처럼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벧전 4:7∼10).
강병오 교수(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