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女 화끈한 男…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같아요”

입력 2011-05-27 17:33


‘다르지만 닮은 감독’ 부지영-양익준, 옴니버스 영화로 뭉쳤다

2009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서 세밀한 여성 심리 묘사와 깜짝 놀랄 반전으로 호평을 받았던 부지영(40·왼쪽 사진) 감독과 같은 해 ‘똥파리’에서 숨이 멎을 듯한 현실 비판과 파격적인 화법으로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양익준(36·오른쪽) 감독이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애정만세’로 뭉쳤다. 섬세한 여성 감독과 화끈한 남성 감독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에게 ‘평소 영화 스타일이 무척 다르지 않느냐’고 하자 이들은 “표현 방식이 달라 보일 뿐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똑같다”고 입을 모았다. 26일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만난 두 감독은 자신의 영화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우선 함께 작업한 느낌이 어땠는지를 묻자 역시 서로 다른 대답이 나왔다. 양 감독은 “그냥 아는 누나와 함께 작업한다고 생각했을 뿐, 별 감흥이 없었다”고 ‘쿨’하게 대꾸했고, 부 감독은 “내가 세계적인 이슈를 몰고 온 양 감독과 영화를 만들다니, 감사한 일”이라고 겸손해했다.

‘애정만세’는 부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과 양 감독의 ‘미성년’ 등 두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산정호수의 맛’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40대 중반의 순임(서주희)이 산정호수 야유회 때 자신과 2인3각 경기를 펼친 직장 동료를 그리며 홀로 산정호수 나들이를 다녀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성년’은 소심한 30대 남자 전철(허준석)이 우연히 만난 10대 여고생 민정(류혜영)과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신을 ‘영화를 맛깔스럽게 만드는 감독’으로 표현해 달라며 웃던 부 감독은 누구나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나 매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잖아요. 청춘들의 연애만 사랑인가요? 천만에요. 나이가 든 평범한 여성이라도 얼마든지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중년 여성의 사랑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나이를 떠나 모든 인간에게 소중한 사랑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하찮게 여겨지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부 감독은 중년 여성의 복잡한 심리를 휴대전화나 초콜릿 바 등을 이용해 절묘하게 묘사했는데,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회 때 이런 장면들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고 전했다.

자신을 “영화계의 이단아도 못되는 삼단아”라고 부르는 등 시종일관 입담을 과시하던 양 감독은 ‘미성년’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저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에요. 무언가 안에서 뜨끈뜨끈하게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다 영화를 만들곤 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은 사실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 이래저래 쑥스럽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제가 만든 작품이니 사랑스러워요. 또 이 작품은 저의 지금 수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고요.”

양 감독은 인터뷰 내내 냉철한 머리보단 따뜻한 마음을 강조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하게 촬영하기 보단 현장 분위기에 따라 배우와 스태프의 느낌을 믿고 따라가는 그의 영화 찍는 스타일과 통하는 데가 있다. 그의 영화에는 이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긴장감을 안겨주는 장면들이 유독 많다.

반면 부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서 연출부로 활약하며 영화계 입문한 탓인지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는 편이다. 순임이 여고생 딸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핀잔을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 감독은 ‘이런 모녀도 있느냐’는 배우들의 볼멘소리를 못들은 척 했다고. 부 감독은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는 그러나 절묘한 화음을 이루고 세대를 초월한 사랑의 소중함을 전달한다.

두 감독에게 제목의 뜻을 물었다. 부 감독은 “‘산정호수의 맛’은 산정호수에서 먹는 초콜릿 바의 맛을 줄인 말이다. 달콤한 초콜릿 안에 퍼석거리며 씹히는 그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고, 양 감독은 “영화에 미성년자도 등장하지만 사실은 부족한 나와 내 작품 전체를 함축적으로 쓴 것이다. 또 미성년처럼 성숙하진 않지만 관객들이 희희덕거리며 즐겨주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대충 그런 뜻이다”고 말했다.

글=김상기 기자, 사진=구성찬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