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욕설의 사회학
입력 2011-05-26 18:54
국립국어원 편 국어사전은 욕설(줄여서 욕)을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로 정의한다. 요컨대 욕의 본질적 기능은 모욕과 저주다. 그런가하면 욕을 감정의 표현으로서 ‘분노의 폭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인 피터 콜릿 전 옥스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이 욕을 하는 것은 분노를 일으킨 근원에 대항해 ‘언어적 교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회는 모욕이나 저주할 대상, 분노의 대상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욕이 없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유난히 욕설 어휘와 표현이 많을 뿐 아니라 욕설이 난무하는 나라가 있다.
한국이 그중 하나다. 그것도 듣기 민망한 성적 욕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횡행한다. 기껏해야 각각 ‘거북이 알’을 뜻하는 왕바단(王八蛋)이나 ‘말과 사슴’을 의미하는 ‘바카(馬鹿)’ 같은 욕이 대표적인 중국 일본 등 같은 문화권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이는 특히 두드러진다. 낯 뜨거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회 전반이 그러니 청소년사회가 예외일 수 없다. 욕을 밥 먹듯 매일 하는 우리나라 초·중·고생이 전체의 73%(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조사)요, 학생들의 ‘대화 중 반 이상이, 또는 조사(助詞)를 뺀 모든 대화내용이 욕설과 비속어’라고 응답한 유·초·중·고 교사가 66.1%(2010년 교총 조사)다. 교과부 등이 25일 ‘학생 언어문화 개선 선포식’을 열고 연중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도 당연하다. 거의 연례행사화 됐지만.
이 같은 우리 사회의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욕의 본질을 떠나 ‘순기능’을 말한다. 욕을 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감정상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카타르시스설이다. 또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설도 있다. ‘욕쟁이 할머니’ 음식점이 그래서 인기라는 것. 실제로 교과부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욕을 하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와 ‘친근감 표시’라는 답이 각각 3위와 4위로 나타났다.
문제는 1위와 2위다. 1위가 ‘습관적으로’였고 ‘남들이 하니까’가 2위였다. 특별히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욕을 하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욕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계층어’를 운위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핀잔받기 십상이겠지만 분명히 ‘교양 있는 말’과 거기에 기반한 ‘교양 있는 사회’는 존재한다. 청소년들의 교양 있는 말하기는 교양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선결조건이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