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사 주유소는 빼가지 말자”… ‘관행’ 명분 11년간 나눠먹기

입력 2011-05-26 22:04


4000억 넘는 과징금 정유사들, 원적 담합 어떻게 했나

올 들어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도마에 올랐던 정유사들의 짬짜미 실체가 드러났다. 각자 계약을 맺고 있는 주유소는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담합하면서 기름값이 떨어지는 걸 막았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26일 4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업계가 반발하고 있어 실제 제재 수준은 얼마가 될지 미지수다.

◇11년간 지속된 ‘주유소 나눠먹기’=공정위가 확인한 담합의 시작은 2000년 3월이었다.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개사 소매영업 팀장들은 서울 한 식당에서 만나 주유소와 원래 계약을 맺어둔 ‘원적사’의 기득권을 인정해주자는 ‘원적관리 원칙’에 합의했다. 기존 계약이 끝나 해당 주유소가 무폴 주유소(브랜드 없는 주유소)가 되더라도 통상 3년 동안은 원적사 외의 다른 정유사는 기름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임의 이름은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 대책반’이었다. 정유사들이 공급가격 인하 요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유소 유치 경쟁을 하지 말자고 합의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이 합의에 따라 다른 회사와 계약이 있었던 주유소가 거래를 요청해 와도 원적사의 포기각서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해왔다. 정유사의 지역 지사장이나 영업사원들끼리 접촉해 각사의 원적주유소를 교환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후 2001년 9월 주유소의 ‘복수상표표시제도’가 도입되면서 주유소 유치 전쟁이 또 촉발될 상황이 되자 SK, GS, 현대오일뱅크 등 3개사는 주유소가 복수 상표 신청을 할 경우 상표를 철수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최근까지도 이 같은 행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왔다고 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반발=공정위에 따르면 2000년과 2010년 각사의 시장 점유율은 SK 36.0%→35.3%, GS 26.5%→26.8%, 현대오일뱅크 20.9%→18.7%, 에쓰오일 13.2%→14.7% 등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시장에 경쟁이 없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정유사 원적 관리 행위를 엄중히 제재함으로써 정유사, 주유소 간 수직계열화 구조를 깼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경쟁이 활발해지면 소비자가격 하락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담합한 적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각 사는 법적 대응 의지도 밝히고 있어 실제 공정위가 내린 제재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2009년 사상 최고 과징금이 부과된 액화석유가스(LPG) 담합 건도 업체들이 소송을 걸어 아직도 법원에 계류 중이다. 또 자진 신고한 업체에는 과징금 등 재제를 면제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로 인해 전체 과징금액도 4348억원에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이번 건의 경우 가장 많은 과징금(1772억원)을 부과 받은 GS칼텍스가 최초 신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민영 박재찬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