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강렬] 한나라당이 이상하다

입력 2011-05-26 18:17


한나라당 원내대표 황우여(4선), 국회 정보위 위원장 권영세(3선), 외교통상통일 위원장 남경필(4선) 의원은 집권 한나라당 중진(重鎭)의원이자 국회를 이끌어가는 대표주자들이다. 황 원내대표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각급 법원 판사를 역임하고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있다가 정계에 들어왔다. 권영세 위원장은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미 예일대 한인 학생회장 출신인 남경필 위원장은 경인일보 기자를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이들을 묶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보수’다. 그들이 자신의 이념적 색깔을 어떻게 정의하든 성장배경, 학벌, 직업, 경력을 봤을 때 객관적 이념적 좌표는 중도우파보다 더 오른쪽에 찍힐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이들이 진보 흉내를 내고 있다. 18대 국회 마지막 원내 운영을 책임진 황 원내대표가 당·청과도 제대로 조율이 안 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 안은 2009년 민노당 권영길 의원이 내세운 등록금 경감방안과 거의 차이가 없다. 민주당은 발끈해 자신들이 ‘반값 등록금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진보 흉내 내는 한나라 의원들

‘반값 등록금’ 문제로 당내외가 어수선한 판에 남·권 두 국회 상임위원장은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지 말고 대북교류협력을 재개하자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나라당 내에서 쏟아져 나온 진보적 목소리보다 한참 더 좌측으로 이동한 목소리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5월 24일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북조치로 북한에 대한 모든 교류협력을 중단시켰다. 국민은 원칙을 고수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시 우리 젊은 군인 46명이 떼죽음당한 1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데 북한의 사과를 받지 말고 교류협력을 하자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보수’들이 왜 갑자기 이럴까? 이들의 최근 발언과 주장을 보면 어색한 색깔의 옷을 걸쳐 입고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몸짓을 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해답은 지난 4·27 재보선 패배에 있다. 한나라당 내 수도권 지역의 의원들은 “이러다 다 죽는다”고 아우성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하고 있다. ‘바꿔! 바꿔!’는 한나라당의 생존전략이 되었다. 이 세 의원의 처지도 같다. 황 원내대표 지역구는 인천 연수구, 남 위원장은 경기 수원 팔달구, 권 위원장은 서울 영등포 을구다. 이들 세 명 모두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간판으로 살아남기 힘든 지역 출신이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은 두 달 전 보다 5.4% 포인트 떨어졌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한 달 전보다 4.2% 포인트, 연초보다는 12.6% 포인트나 하락했다. 특히 보수층인 장년층과 노년층 즉, 40∼60 대들의 이탈이 눈에 띈다. 고물가, 실업 등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불만도 크지만 정체성을 상실한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똘똘 뭉치는데 보수층은 한나라당을 외면하고 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에서조차 “내년 총선에서 두고 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동남권 신공항을 비롯해 최근 대형 국책사업 부지 선정에서 보여준 미숙함 때문이다.

진정 보수의 길 걸어야 산다

보수 한나라당은 이제 기댈 곳이 없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추락하는 지지도 만회책으로 진보성향의 민주당 흉내를 낸다고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표를 줄 리 없다. 아주 속된 표현으로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진보로 가려면 당을 해체해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존재이유는 보수가치의 수호다. 진보 흉내를 내서 내년 총선에서 다시 다수당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 나라는 아직 보수가 다수다. 한나라당이 사는 길은 진보와 차별되는 진정한 보수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