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오늘 행복하세요?
입력 2011-05-26 18:16
화단에 철쭉이 와르르 피었다. 햇살을 받아 화려함이 더욱 눈부시다. 나는 환한 꽃웃음에 반해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췄다.
같은 화단에 핀 꽃들에도 다양한 일생이 보였다. 어떤 꽃은 꼭대기에 피어 뭇 시선을 끌다가 시든다. 어떤 꽃은 귀퉁이에 피어 시선을 별로 받지 못하고 시든다. 저런, 화단 옆에 예쁜 꽃봉오리가 꺾여 떨어져 있다. 제대로 피기도 전에 사고를 당한 가장 안타까운 꽃이다.
며칠 전 아는 작가가 전화를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동료 작가 아들의 부고를 전했다. 아직 청소년인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거다. 나는 가슴이 에이고 숨이 막혔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는 걸 또 한번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른다. 바로 몇 시간 뒤일 수도, 내일일 수도 있다. 속상하지만 안 가겠다고 떼를 쓸 방법이 없다. 하늘이 언제 불러도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지금 떠나도 조금은 덜 억울하게끔.
아이 문제를 결정할 때도 생각을 바꿨다. ‘아이에게도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런데 부모라고 아이 행복을 강제로 유보시키는 것이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 최고 고민이 학원에 너무 많이 다니는 거란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호소하면 많은 부모들은 말한다. “조금만 참아. 선행학습을 해야 좋은 중학교 가고, 좋은 고등학교 가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가고, 좋은 배필 만나 편히 살 수 있어. 안 그러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말이 좋아 설득이지 반 협박이다. 세련된 말로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고생을 미리 당겨서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달콤한 열매를 아이가 꼭 따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만약 쓰디쓴 고생만 하다가 떠나야 한다면 부모가 책임져줄 수 있을까?
최근 최고 학부 학생들이 거듭 목숨을 끊었다. 수능 때만 되면 점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 소식도 들린다. 그때 드는 생각은 ‘참, 고생만 하다 가네’다. 이처럼 행복을 미루기만 하다가 죽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할까? 물론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그런 보험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굶으면서까지 보험 드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난 내 아이에게 불행이 닥치더라도 ‘그래 지금껏 나름 행복했어’라고 웃으며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점이 연속적으로 모여 선이 된다. 일생도 오늘의 연속이다. 오늘이 지나면 또 오늘이다. 결국 행복한 오늘, 오늘이 이어져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리라. 어쩌면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화단에 화려하게 피어 있는 철쭉. 햇살을 듬뿍 먹고 자란 꽃들이 내게 가만히 속삭인다. ‘내일은 못 볼지 몰라요. 오늘 많이 보세요.’ 그래 꽃아, 너희들이 내 선생님이다.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