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CO₂ 줄이기 ‘달인’을 만나다… 폼나고 재밌게 ‘에너지 절약’ 3가지 이야기
입력 2011-05-26 18:59
인간은 이산화탄소(CO₂)를 남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발자국처럼 탄소를 흩뿌린다. 산업혁명 이후 250여년간 지구 전체에서 대기 중 CO₂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게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주범임은 과학이 입증했다. 지금도 탄소산화물은 북극곰이 발 딛고 서 있는 빙하를 녹이고, 제주 해녀의 바닷속 전복 텃밭을 망치고 있다.
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원한다면, 더해서 돈도 벌고 싶다면? 한국형 CO₂ 줄이기 스타 발굴 프로젝트가 다음달 1일부터 시작한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전년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폼나게’ 줄이는 개별 가구와 공동 단지를 찾고 있다. ‘에너지 절약 1만 우수가구 선발대회’다.
쿨하게 삶의 미니멀리즘을 즐기기만 하면 누구나 장재인, 허각이 될 수 있다. 1등을 거머쥔 가구에는 500만원이 돌아간다. 모두 20가구에 1등 자격을 부여한다. 아파트 공동 단지 최고 상금은 1억원이다.
대전 유성구 강재희씨
2010년 5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아파트에서 줄인 전기 사용량은?
·전기 감축량 852㎾h
· CO₂ 절감 400㎏/CO₂
·잣나무 120그루
IT 벤처기업 실장인 강재희(34·여)씨는 지난 12일 ‘CO₂ 줄이기 슈퍼스타 K’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24일 대전 유성구 대전한빛 아파트로 강씨를 만나러 갔다. 이 아파트는 카이스트와 벽을 맞대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자 강씨가 키우는 여섯 살짜리 미니핀종(種) 애완견 ‘투남’이 먼저 짖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거실엔 붉은 꽃문양 포인트 벽지, 확장하지 않은 베란다엔 작은 액자가 전시된 탁자가 있다. 미혼인 강씨는 여동생 원남씨와 수컷 투남과 함께 산다. 투남이가 있는데도 32평 아파트에서 티끌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강씨가 싱크대 아래쪽을 열었다. 안방 거실 등 보일러 온수 유입을 통제하는 난방조절밸브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90도가 아닌 45도씩 어중간하게 열려 있다. 욕실에는 욕조가 없다. 강씨는 대신 세숫대야를 놓고 그 안에 발을 넣은 뒤 샤워를 한단다. 강씨는 “흘러내리는 비눗물을 모아 욕실을 청소하고, 몸을 헹구며 나오는 물로는 화분을 키운다”고 했다.
강씨가 서재로 꾸민 건넌방으로 안내했다. 컴퓨터 책상 뒤편에서 특별한 걸 발견했다. ‘PC용 절전형 멀티탭’이다. 컴퓨터 본체를 연결하는 구멍이 1개 있고, 조금 떨어져 모니터 프린터 스피커 등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구멍이 4개 있다. 컴퓨터가 잠시 대기모드에 들어가면 나머지 주변기기의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는 지능형 멀티탭이다. 코드를 꽂아 놓을 때 생기는 휴면전력은 물론, 잠시 켜두고 딴짓할 때 생기는 대기전력까지 잡아내는 것이다.
강씨에게 지난 1년치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장롱 속에서 지난 2007년 처음 이 아파트를 사서 들어온 이후 모아놓은 고지서를 전부 가져왔다. 지난해 4월 177㎾h의 전기를 써서 이 항목에 1만6980원을 냈다. 올해 4월은 106㎾h를 써서 8050원만 냈다. 전기료는 누진제라서 많이 쓸수록 1㎾h당 가격이 올라간다. 4월치를 기준으로 지난해부터 1년간 줄여온 총량을 합쳐 보니 모두 852㎾h의 전기를 아꼈다. 요금으로 치면 1년에 11만2320원을 번 셈이다. CO₂ 1t이 나오는 화석연료 부피를 기준으로 한 배출량의 단위(㎏/CO₂)로는 400에 해당하며, 쉽게 풀면 강씨가 1년간 휘발유 136.4ℓ를 덜 썼다는 뜻이다. 다 자란 잣나무 120그루가 일년 내내 광합성으로 흡수하는 CO₂양이다.
강씨는 지난해 4월과 견줘 물 사용량도 27㎡에서 17㎡로 줄였다. 전기 먹는 하마 진공청소기 대신 올이 나간 스타킹을 밀대에 끼워 밀면, 머리카락은 물론 개털까지 잡아낸단다. 이웃집 스팀청소기가 선사하는 반질반질함이 부러워지면 무릎을 굽히고 손걸레로 마루를 민다. 강씨는 “칼로리 소모가 많아 다이어트에도 좋다”며 웃었다.
앞서 강씨는 And의 섭외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 본인 가구보다 식구도 많고, 달인 수준으로 절약하는 가족들도 많은데 부끄럽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경연은 ‘절약의 달인’을 찾는 게 아니다. 전등도 난방도 켜지 않고 1년간 방안에서 시체처럼 지내면 에너지 사용량이 제로일 수밖에 없다. 그건 품위가 없다. 핵심은 6월 1일부터 내년 5월 31일까지 1년간 얼마나 재밌는 아이디어로 점차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 가느냐이다.
강씨 말고 다른 참가자 여럿이 자랑한 ‘아침마다 변기에 가족 대소변을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물 내리기’도 아쉽지만 해당되지 않는다. 물 사용량은 평가 항목에서 빠졌다. 이번에는 전기와 가스만 측정한다. 강씨는 아직 본 경연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자신의 비법을 모두 공개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이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대학 졸업 후 LG CNS에 다니다 일본 싱가포르 등 현지 IT 업체에 들어가 일도 하고 여행도 했어요. 후쿠오카 스튜디오에 살면서 메이와쿠(迷惑,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마음)에 깊은 인상을 받았죠. 외국 친구들에게 교토의정서 이야기도 들었어요. 한국에도 있어요. 법정 스님의 책이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사람을 죽이는 것만 죄가 아니라 사물을 죽이는 것도 죄’라 했죠. 우리 엄마는 아직도 비닐봉지를 빨아서 다시 쓰세요. 수도꼭지를 더운 물 쪽으로 돌리지 못하도록 고무줄을 묶어 놓으세요. 전 ‘새 발의 피’입니다.”
경기도 양평 박소현씨
하루 2시간씩 아파트 거실에서 자가발전 자전거 타며 만든 전기 1년간 모으면?
·전기 생산량 73㎾h
·CO₂ 절감 34㎏/CO₂
·잣나무 10그루
대전에서 강씨와 투남이의 배웅을 뒤로하고 KTX 편으로 서울역에서 내린 뒤 전철을 갈아타고 경기도 양평 벽산블루밍 1차 아파트로 향했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 43평형에 사는 조근수(44) 박소현(41) 부부를 만났다. 거실엔 텔레비전 대신 운동용 사이클 머신이 있다. 조씨는 공무원, 박씨는 간호사다. 조씨가 페달을 밟자 LCD 모니터에 영상이 나온다. 이 집에선 TV를 보려면 스스로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지난 2월말 자가발전 자전거 운동기계를 들여놓은 이후, 이 집의 한 달 전기사용량은 412㎾h에서 332㎾h로 감소했다. 하루 2시간씩 운동하며 전기를 만들면, TV뿐 아니라 노트북 휴대전화 닌텐도 게임기는 물론 전기방석도 쓸 수 있다. 페달을 밟다 지친 고2·중2 두 아들은 드라마 대신 책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한다. 엄마 박씨는 “43평에 살지만 1년 전 27평에서 살던 수준으로 전기료 가스비를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비법은 “500만원을 탄 후에 털어 놓겠다”고 했다. 다만 아파트 앞이 논으로 뒤덮인 평야 지대라서 가정용 풍력발전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부평 하나타운 아파트
지하주차장 24시간 켜는 형광등 80개 모두 LED로 교체, 1년 지나면?
·전기 절감 1만1914㎾h
·CO₂ 절감 5588㎏/CO₂
·잣나무 3610그루
지난 23일에는 공동단지 대결에 출사표를 던진 인천 부평구 갈산2동 하나타운 아파트를 찾았다. 526가구 전체가 32평 단일평수로 구성된 19년 나이의 이 아파트 단지는 과거 대우자동차였다가 지금은 GM 부평 공장으로 이름이 바뀐 곳과 개천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다. 3교대로 24시간 일하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많이 산다.
관리소장 오영옥(49·여)씨는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먼 이야기이고, 관리비 고지서 10원짜리 항목이 가까운 이야기”라고 했다. 관리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50대 후반 나이의 경비원 인력을 한 명씩 한 명씩 더는 줄일 수 없을 때까지 구조조정을 했다.
오 소장이 그나마 숨통을 트게 된 건 엉뚱하게도 지렁이다. 2009년부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의 인센티브를 타기 위해 지렁이를 대량 사육했다. 지렁이가 가장 좋아하는 쓰레기는 수박 껍질이다. 지렁이와 주민들의 협조 덕분에 이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는 해마다 1800여t씩 줄고 있다. 가구별 1000원씩 받던 음식물 수거비용을 684원까지 감축했다. 지렁이가 만들어준 퇴비는 CO₂ 절감을 위해 단지에 새로 심은 백일홍과 사철나무의 영양식으로 투입된다.
오 소장은 다음달 시작될 ‘슈스케’를 위해 지하주차장에 24시간 켜놓는 40W짜리 형광등 80개를 모두 23W짜리 LED 전구로 교체할 예정이다. 비용 부담이 있지만 주민들이 뜻을 모아 줬다. 예정대로 된다면 1년 뒤 이 단지의 공동 전기료는 119만1400원 가량 줄어든다. 갈산 하나타운 주민들은 지구를 위해 3610그루의 잣나무를 새로 심은 효과도 덤으로 누리게 된다.
대회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몇 걸음만 옮겨 30분만 둘러본다면 어디서 전기와 난방 에너지가 새는지 찾아낼 수 있다. 통계청 2005 인구센서스 기준으로 한국 아파트 거주자의 평균 주거 면적은 73.3㎡(22.2평)이다. 같은 면적에 사는 이웃들과 비교해 보면 약점 찾기가 더 쉽다.
또 하나.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2010 인구센서스 잠정 집계(최종 결과는 7월에 발표한다)를 보면 전 국민의 54.0%가 아파트에 산다. 2005 인구센서스(46.9%) 당시보다 7.1% 포인트 늘었다. 5년 새 350만명 이상 새로 아파트 입주민이 됐다. 증가율은 경기도와 6대 광역시 덕에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31일 오후 6시 이전까지 신청 등록을 마쳐야 한다. 오늘(27일)을 포함해 닷새 남았다. 여기까지 읽으신 뒤 ‘그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바로 신청하셔도 된다. 에너지관리공단 홈페이지로 가시라. 일상을 바꾸어 지구를 구하는 혁명은 클릭에서 시작됩니다.
대전·양평·인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