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광장에 코엑스, 신발공장엔 이마트가 들어선다면… ‘평양 재개발’ 그 발칙한 상상

입력 2011-05-26 19:28


평양 그리고 평양이후/임동우/효형출판

면적 1100㎢, 인구 250만 명. 서울의 2배 면적에, 인구는 4분의 1에 불과한 도시. 사회기반시설은 탄탄한 반면, 상업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택지와 공업단지가 뒤섞이고, 도심 부근까지 논밭이 진출해있다. 대도시 서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구조가 낯설기만 한 타자의 도시. 평양이다.

평양은 기호이거나 개념이었다. 평양에 가본 소수에게도, 갈 수 없는 다수에게도 평양은 독재의 상징이자 체제선전의 거점이었을 뿐 현실의 도시는 아니었다. 건축가 임동우(34)가 쓴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는 이념과 체제라는 안경을 벗고 바라본 객관적 평양론이다. 평양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읽고 미래를 상상한 건축 전문서.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은 통일론이라는 의외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건축가 버전의 각론’이라 할만하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서 설계사무소 ‘프라우드(PRAUD)’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했다는 제한적 의미에서, 평양은 어느 정도 성공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건 평양이 평양시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는가라는 질문과 무관하다”며 “평양의 DNA를 알면 앞으로 평양이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할 수 있다. 이제 국제무대에 북한에 관한 건축적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그건 한국인의 몫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주택 옆 공장’, 평양의 풍경

427년 고구려 수도로 출발한 평양은 1600여년 역사의 고도(古都)지만, 오늘의 평양은 6·25 전쟁 후 폐허위에 건설된 현대적 계획도시다. 사회주의 이념은 도시의 설계도가 됐다. 어떤 의미에서 평양은 북한 체제가 꿈꾼 이상향의 물리적 구현물이었다. 그게 성공작이든, 실패작이든.

핵심은 생산과 거주의 통합이다. 평양에는 주택단지와 생산시설이 뒤섞여 있다. 일하고 쉬는 한 인간의 활동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신념이 도시계획의 바탕이었다. 주민 4000∼7500명이 모여 사는 ‘구역봉사단위’에는 주택과 밥 공장, 어린이 놀이터, 작업장, 학교 등이 함께 배치됐다. 주거와 생산, 소비, 문화, 교육시설이 한데 모인 자족적 공간이다.

자본주의 도시에서라면 일찌감치 지방으로 쫓겨났을 공업단지가 도시 내부에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평양에는 도심을 기준으로 반경 5㎞ 내에 평양비단공장, 평양방직공장 3·26공장 등 6∼7개의 주요 공업지역이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자급자족이 가능한 중소도시’라는 사회주의적 이상에 맞춘 설계다.

서울의 2배에 이르는 녹지공간은 도농(都農) 격차를 없애기 위한 수단이었다. 녹지의 대부분은 농지. 평양시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녹지공간을 제공하는 두 가지 기능을 겸했다. 거대 건축물과 광장, 동상, 탑 같은 상징공간에는 선전선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이 녹아있다.

평양에 자본이 유입되면

바깥세계가 아는 평양은 그대로였지만, 현실의 평양은 늘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이다. 변화의 방식이 붕괴일지, 점진적 개방일지 짐작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중심에는 반드시 자본이 있다. 자본의 첫 타깃은 가장 ‘사회주의적인’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민대학습당 등이 밀집한 북한체제의 심장, 김일성광장이다.

자본이 군침 흘릴 이점은 많다. 평양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장점과 잘 연결된 도로망이라는 편의가 동시에 갖춰져 있다. 대형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의 미래 용도는 호텔 또는 박물관으로 예측했다.광장 지하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처럼 지하철 상가 전시장 호텔 백화점이 밀집한 복합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김일성광장이 대표 관광지 후보라면, 중심업무지구 1순위는 류경호텔 주변이다. 완공되면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극적으로 바꿀 ‘아이콘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공업단지는 자본주의 꽃인 대형 상업시설 부지로 적당하다. 보통신발공장 터의 이마트, 평양방직공장의 코스트코. 공상만은 아니다.

평양, 제3의 길은 존재할까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대동강변에 성냥갑 아파트를 짓겠다는 분양 광고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선전문구로는 ‘대동강 조망권, 도심 생활권’이 유력하겠다. 시장경제를 포용한 뒤 평양에 들어서게 될 명물이 고작 코스트코와 지하쇼핑몰, 강변 아파트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평양은 ‘2류 서울’밖에 안 될 테니까.

그러나 저자는 평양이 서울의 이중대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사회주의 계획도시로 출발한 평양은 자본주의 메가시티 서울과 출발이 달랐고, 다른 길을 거쳐 성장했다. ‘평양이 서울과 다르다’는 이 자명한 사실은 뜻밖에 평양의 미래를 낙관할 근거가 됐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적 공간들은 적절한 변형만 거친다면 시장경제 원리를 흡수하면서도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본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가장 ‘평양다운’ 공간이야말로, 과밀화 녹지부족 같은 지극히 ‘서울다운’ 고민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이 맘에 들지 않는 이들. 평양에서는 다른 길을 꿈꿔볼 만하겠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