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고엽제 파문] “71년 민간인 동원 DMZ 살포… 미군은 감시 작업”
입력 2011-05-26 00:42
미군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엽제를 베트남과 한국 두 곳에서 사용했다. 한국전 당시인 1952년 전투 현장에서 전술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금의 고엽제를 개발해 냈다. 한국전에서는 실제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발을 거듭해 61년 1월~71년 1월 베트남에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이 실전에 사용됐다.
한국에서는 68년 4월과 69년 5~7월 두 차례 비무장지대(DMZ)에 고엽제가 살포됐다. 이 사실은 95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공식 확인된 것이다. 이후 한·미 당국도 고엽제 살포를 정식으로 발표했었다. 하지만 DMZ에 뿌려진 고엽제의 정확한 규모나 다른 지역에도 살포됐는지는 확실치 않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엽제 전문가인 앨빈 L 영 박사가 2006년 12월 작성해 미 국방부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 ‘전술 제초제 발달사: 테스트, 평가, 저장’에 따르면 68년 4월 15~28일 실시된 고엽제 DMZ 1차 살포작전 당시에는 한국군 1군단 장병 3345명이 동원됐다. 미군은 고엽제를 뿌리거나 섞거나 희석시키는 등 고엽제를 직접 다루는 어떤 행위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루 형태 고엽제인 모뉴론(monuron)을 맨손으로 뿌리거나 기계를 사용해 살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뿌려진 모뉴론은 미 국방부의 69년 1월 보고서에 따르면 7800드럼(39만7800파운드)이다. 그러나 DMZ 고엽제 살포 사실이 처음 알려진 99년 11월 우리 국방부 발표를 보면 모뉴론 살포량이 50분의 1에 불과한 7800파운드로 돼 있어 축소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는 “그때 우리 군에는 고엽제 살포량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며 “당시 미국 측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70년대 DMZ 고엽제 살포에 민간인이 동원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녹색연합은 최근 강원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지역에 사는 한 주민과 인터뷰를 통해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고엽제 살포 작업에 민간인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주민은 “71년 DMZ 시야 확보를 위해 불모지 작업을 하면서 고엽제를 살포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목책 주변으로 풀이 자라날 때마다 수시로 작업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군부대의 요청으로 주민들이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고 현장에서 미군이 고엽제 이동과 살포를 감시했다”고 덧붙였다.
재미교포 블로거 안치용씨도 25일 고엽제 살포 절차를 규정한 ‘식물통제예규’를 입수해 공개했다. 이 예규는 68년 주한미군사령부가 DMZ 고엽제 살포 절차 등을 예하 부대에 세세히 지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규는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블루, 모뉴론 등에 대한 효능을 설명하고 있으며 살포 요령, 살포 후 장비 정비요령 등을 담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김남중 기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