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지역안배 인사 않겠다고?

입력 2011-05-25 19:06


“청와대엔 자기 사람 심되 내각에는 탕평인사로 국민통합 꾀해야”

정부 인사(人事)의 지역편중은 역대 정권의 고질병이었다. 지역감정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박정희 정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영남 군사정권에서는 주요 권력기관과 사정기관에 호남 출신이 기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철저하게 영남 독식이었으며, 그것도 대구·경북에 편중됐었다.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역편중이 다소 완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부산·경남 편중으로 흐르고 말았다. 호남 홀대는 여전했다.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호남 출신들이 요직에 발탁돼 사실상 처음으로 영호남 균형인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이번에는 호남 편중이 극심해졌다. 뒤이은 노무현 정권 때 어느 정도 균형을 잡는가 했더니 이명박 정권에서는 영남 편중 악습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역편중 인사가 국민화합을 저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최소한 내각에서는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 왔다. 청와대와 정보기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는 자기사람을 앉히더라도 총리나 장관 차관을 임명할 때는 나름대로 지역안배에 신경을 썼다. 영남 편중이 노골적이었던 군사정권에서도 내각에 호남 출신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정치권력과 거리가 먼 농림부 장관의 경우 호남 출신이 도맡은 적이 있다. 산술적 균형을 통해 국민들에게 눈가림이라도 하려는 속셈이었을 게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선 지역안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정지역이 득세하거나 소외될 경우 지역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때 호남 출신 장관이 전무했던 적이 있다.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왜 호남 출신을 한 명도 기용하지 않느냐고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때 김 대통령은 “미국에선 정권이 바뀌면 몽땅 자기사람으로 행정부를 채운다”며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직후 여론이 급격히 악화돼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한국 대통령이 한국 얘기를 하지 않고 미국 문화를 얘기했으니 그럴 수밖에.

청와대가 앞으로 언론에 배포하는 인사 보도자료에 임명 공직자의 출생지와 출신고교를 기재하지 않겠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인사에서 지연이나 학연보다 능력을 중시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출생지와 출신고교를 배려하는 지역안배 인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종합해 보면 지금부터는 지역안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우리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참으로 안이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현 정권은 특히 출범 때 지역편중과 연고 중심의 인사를 해 ‘고소영’ ‘강부자’ 정부란 비아냥을 들은 전력이 있다. 지금도 영남 편중이란 야당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지역안배에 신경을 썼음에도 편중현상이 있는데 그것마저 외면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인사의 지역편중은 과거 예로 볼 때 정권 말기로 갈수록 점점 심화되는 속성이 있다. 권력자 입장에서는 대선 때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챙겨주려 하고, 대선에 기여한 사람들은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들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을 도운 사람 중에는 영남 출신이 많다. 지역안배 인사를 하지 않을 경우 영남 편중이 더 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권 후반기에 자신의 통치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을 중용하고 싶을 것이다. 출신지역을 놓고 셈하기보다는 자신을 발 벗고 도와줄 인물을 기용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자기 사람은 정권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포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각에는 의도적으로 지역안배와 탕평인사를 함으로써 국민통합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

성기철 카피리더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