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전석운] 등록금 부담 완화 실현돼야
입력 2011-05-25 19:07
대학 등록금이 서민 가계를 짓누르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오래 전부터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겠는가.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야 등록금을 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최근에는 모골탑(母骨塔)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아버지의 수입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전업주부로 지내던 어머니마저 노래방 도우미든 뭐든 닥치는 대로 벌이에 나서야 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대학 등록금은 최근 10년 사이 많게는 3배 이상 폭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국공립대 최고 등록금은 496만원, 사립대는 655만원이었다. 2010년엔 각각 1620만원, 1347만원으로 뛰었다. 지난 1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이 385만8000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대학 등록금에 쏟아부어야 한다. 가뜩이나 부채를 안고 사는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은 서민 가계를 위협하고 있다. 대학생 자녀가 두 명이라면 웬만한 중산층 가정도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소득계층 하위 20%는 번 돈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고 하위 10%는 아예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보조 받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간부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런 혜택이 없는 직장인이나 저소득층 가정은 대학 등록금 마련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더라도 학자금 혜택을 받기도 전에 직장에서 잘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에 앞장서겠다니 만시지탄이지만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꼭 관철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옳은 일이라고 판단되면 추진하는 것이 옳다. 누가 하든 다수 국민의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는 데 앞장선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일부 기업은 일정 기간 근무한 임직원에게 퇴직 이후에도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 정부 들어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대학들의 등록금 동결과 인상 억제를 유도하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학자금을 대출하는 등 서민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은 금리가 높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작지 않고 대학 졸업 후 취업을 못 하는 젊은이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이에 반해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주창한 ‘반값 등록금’은 파격적이다. 다만 한나라당의 그간 행태를 보면 이번 일도 용두사미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정치적 지지 기반이 약해질 때나 서민과 소외계층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용도폐기하는 경우를 더러 봐왔기 때문이다. 최근 세금 감면 문제만 해도 황 원내대표가 철회를 주장했다가 청와대와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그건 아니고…’라며 주워담았다.
이번 등록금 부담 완화 문제도 처음엔 ‘반값 등록금’을 내세워 주목을 끌었다가 논란이 일자 ‘반값’이란 용어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언론에 요청하기도 했다. 황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학 등록금 가계 부담은 현재보다 최소한 반으로 했으면 한다”며 “무상으로 할지, 반값으로 할지 국민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다 25일 교섭단체 대표 라디오 연설에서는 “대학생과 학부모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리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무상교육까지 거론하던 기세에 비하면 사흘 만에 어감이 많이 달라졌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사교육비는 줄일 수 있지만 대학 등록금은 줄일 수 없다. 부실사학 정리와 고등교육 재정 확충 등 선행 과제가 만만치 않겠지만 모처럼 여야가 공감하는 대학 등록금 완화 문제만큼은 흐지부지되지 않고 실행되기를 바란다.
전석운 산업부 차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