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멀리서 날아오는 향기
입력 2011-05-25 19:07
태원전 권역이 복원 공개되기 전의 경복궁 북단은 으스스한 공간이었다. 경회루 서북쪽에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의 막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궁궐에 주둔한 군대라∼.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지만 청와대 경호실과 연결돼 있어 뭐라 시비를 걸기 어려웠다.
부대 담장 너머에 펼쳐지는 향원지는 고종 때 인공연못으로 조성됐다. 연못 복판의 향원정은 아래층에 온돌, 2층에 마루를 깔아 왕과 가족들이 사철 이용했다. 30경비단 군인 중 누구는 엉뚱하게도 이곳에서 영어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연못을 가로지는 다리는 취향교다. 왕이 기거하던 건청궁과 이어졌으나 6·25 때 파괴됐고 1953년에 새로 놓으면서 남쪽으로 연결했다. 복원의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건청궁이 복원되지 않던 때였다. 여름의 향원지에 연꽃을 피워 올리면 어떨까. 강세황의 그림 ‘香遠益淸’을 이 연못에서 즐길 수 있으면 고궁의 격이 좀 올라갈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