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들 베틀소리 밤낮 없는 ‘천년 장터’… 서천 한산오일장 나들이

입력 2011-05-25 17:31


45년 역사의 모시 의상실, 3대째 100년간 이어오는 전통 대장간, 27년째 죽은 사람을 위해 전통 꽃상여를 만드는 상엿집, 아직도 납활자로 명함과 인쇄물을 찍어내는 인쇄소, 고장 난 것은 무엇이든 고치는 시계점, 함석으로 쓰레받기와 물뿌리개 등을 만드는 함석집….

한산 모시와 한산 소곡주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한산장터 풍경이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장은 30년 전부터 인구가 줄면서 이름 그대로 한산해졌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공방이 오롯이 남은 덕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를 통해 추억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농번기를 맞아 모내기가 한창인 한산면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모시의 고장답게 첫 수확을 앞두고 어른 가슴 높이로 자란 모시풀이 야트막한 건지산을 오르기도 하고 금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황토구릉도 산책하면서 나날이 키를 더한다.

새벽에 장이 열리는 오일장(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을 제외하면 한산면 소재지는 사람 그림자조차 그리운 고즈넉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낮은 지붕이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한적한 골목길은 씨줄과 날줄을 엮는 아낙들의 베틀소리로 밤낮이 없다. 숙련된 아낙이 오일 밤낮을 하얗게 새워 짜는 모시는 겨우 한 필이다. 한 필은 폭 31㎝에 길이 21.6m로 한산아낙들은 눈물을 씨줄 삼고 한숨을 날줄 삼아 한 올 한 올 길쌈을 한다.

한산장의 볼거리는 지난달에 문을 연 마을 입구의 ‘한다(韓多)공방’. ‘한다’는 한산의 다양한 문화가치라는 뜻으로 대장간 함석집 부채집 짚풀공방 솟대공방 모시공방 등 8곳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판매하는 상설전시장이다.

한다공방에 전시된 물건들은 모두 장인들의 작품이다. 미니쇠스랑 등 대장간에서 만든 농기구와 전통부채인 공작선(孔雀扇), 모시스카프 등은 인기가 높은 작품. 가격이 싼 데다 장인들의 정성이 배어있어 생활용품은 물론 기념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100여개의 점포가 200∼300m도 안되는 골목길에 밀집한 한산장을 꼼꼼히 둘러보려면 한나절도 부족하다. 장날이 아니더라도 후덕한 충청도 인심 덕분에 장바구니가 금세 묵직해진다. 다리품을 팔다 피곤하면 옛날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좋고 배가 출출하면 3대를 이어오는 국밥집에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동서천분기점에서 서천공주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동서천IC에서 내리면 한산모시관까지 자동차로 5분 거리. 한산 모시마을 입구에 위치한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의 직조기술을 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으로 전통공방, 전수교육관, 저산팔읍길쌈놀이전수관 등으로 꾸며졌다.

한산모시관에서 신성리 갈대밭으로 달리다 첫 번째로 만나는 한산면 동산리의 동자북마을은 가양소곡주빚기, 짚공예, 모시베틀원리체험을 해보는 체험마을. 금강변에 위치한 서천달고개모시마을은 한산세모시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모시짜기를 비롯해 사계절 농촌체험행사가 진행된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와 새로 개관하는 이상재 박물관도 볼거리. 금강하구의 조류생태전시관을 찾으면 도요새 등 여름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 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은 폭 200m에 길이 1㎞로 10만평 규모. 어른 키보다 큰 초록색 갈대 사이로 산책로와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곳곳에 시를 걸어놓았다. 강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 소리가 낭만적이다.

서천군은 6월 4∼6일 한산모시관 일원에서 한산모시문화제를 개최한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태모시 만들기, 모시 째기, 모시 삼기, 모시 짜기 등 모시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모시떡, 모시잎차, 모시초콜릿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모시패션쇼와 저산팔읍길쌈놀이도 볼거리.

서천은 해산물 축제가 가장 많은 고장으로 축제 기간 중에 마량포구의 마량어촌계수산물판매센터를 찾으면 값싸고 싱싱한 자연산 광어와 도미를 맛볼 수 있다. 서천읍내에 위치한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은 꽃게 방어 도미 갑오징어 꼴뚜기 소라 대합 바지락 등 서해안 어패류의 총집합 장소. 1층에서 어패류를 사면 2층 식당에서 상차림을 해준다(서천군 생태관광과 041-950-4226).

서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