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산에 오르는 까닭은?… 백두대간 종주 소설가 김별아의 청춘 응원가

입력 2011-05-25 17:53


“내가 산에 올라야 하는 까닭. ‘지금껏 피했던 일과 정면으로 맞서보고 싶다. 아들과 함께 산행하며 돈보다 값진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나고 자란 운명의 삶터를 내 발로 밟아보고 싶다’ 등의 너스레를 떨었지만 등산가 조지 맬러리의 유명한 금언처럼 ‘거기 그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더 내놓을 답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미실’의 작가 김별아(42). ‘평지형 인간’이라 자칭하는 그가 산에 올랐다. 좋아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산, 그에 대한 무섭고 힘든 기억의 편린은 그의 온 마음과 머리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 그가 산을 오른다. 아니, 단순히 오르는 게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 2년간 격주로 40차로 계획된 대장정. ‘국내 유일의 백두대간 종주 여성작가’인 그의 주선으로 ‘산’과 소개팅(?)했다.

안타깝다. 요즘 친구들

한 아이의 엄마. 자연스럽게 요즘 아이, 요즘 젊은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죠. 조기교육 1세대라 불리는 젊은이가 주 독자층이에요. 양질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 안에 중요한 게 빠져 있다는 증거죠.”

영어 수학 태권도 미술 음악…. 독서조차 ‘배운’다. 닥치는 대로 배우는 아이들. 연예인의 로드매니저처럼 아이의 일정을 일일이 체크하는 엄마. 숨쉴 틈 없는 아이들은 조로한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억압이 너무 심하고, 나이를 먹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마음이 아픈 젊은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특히 대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미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팽배한 패배주의. ‘이미 등수가 정해져 있는데 해봐야 뭐….’ 딱하기 그지없단다. 곧 그 나이가 될 아이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명문학교에 갈 수 있다’는 문항에 전국 성인남녀 510명의 응답자 중 68%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젊은 층의 부정적 응답이 두드러졌다는 것. 20∼30대 응답자의 83%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푸념했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싸울 힘은 마음 저편에 접어놓은 채 어둡게 살아가는 것, 지금 젊은이의 초상이다. 그녀, 그게 너무나 안타깝다.

“죽고 싶다. 아니면 죽이고 싶다”

그들이 애처로운 이유는 또 있다. 그 역시 그만할 때 말 못할 고통의 나날을 보냈기 때문. 그녀의 학창시절 일기장에 적힌 문구가 당시 상황을 대변한다. ‘죽고 싶다. 아니면 죽이고 싶다.’

‘사소한 일에 울고 짜증을 낸다. 산만하고 행동이 과격해지면서 극단적인 말을 한다. 밖에 나가지 않고 침통한 표정으로 방에 혼자 있다. 식사도 거르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멍하니 있다.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 자주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뒤늦게 알게 된 소아우울 증상, 자신의 30여년 전 모습에 고스란히 포개졌다. 어린 날의 기억을 조심스레 펼쳐 놓았다. 예민한 기질과 환경의 결합. 힘든 어린 시절을 자체 분석한 결과다.

일찍 엄마 손을 떠났다. “식모 언니들의 손을 전전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모는 일 때문에 어린 김별아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어린아이에겐 부담이고 상처였다.

“다른 집 애들은 싸우면 어른 싸움도 되곤 하는데 저는 제 편이 없었어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 거죠. 지금도 악몽을 꾸곤 해요. 옷장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 죽은 짐승의 시체 같다는 느낌….” 미간을 찌푸렸다.

성인이 돼서도 지속됐다. 신경질과 반항. 그에게 엄마는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아닌, ‘자기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엄마 밀치고 뛰쳐나가고, 밥상 걷어차고…. 요즘 같았으면 ‘긴급출동 SOS 24’ 프로그램에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밖에서는 달랐다. 사랑과 관심,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는 집밖에서 분출했다. 비평준화 지역이라 중학교부터 입시를 치러야 하는 강원 강릉시에서 초·중·고 10년 동안 줄곧 반장 자리를 지켰다. 밖에서는 모범생, 집에서는 폭군. ‘강릉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였다. 그런데 이 이중성은 서서히 자신을 겨냥하는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완벽주의,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은 그를 더 아프게 했다.

힘을 준 친구

아들 때문이었다. 산에 오르게 된 건. 대안학교에 입학한 중학생 아들 친구의 부모 모임에 갔다가 얼결에 시작했다. 처음엔 산 밑에서 파전을 먹으며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린 적도 많았다.

첫 산행. 지난해 3월 13일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서 운봉읍 권포리까지 이르는 16㎞ 코스. 9시간에 달하는 여정을 벌벌 떨면서 갔던 산과의 첫 만남.

“잠도 못 잤는데 산행을 마치고 나니 의외로 힘들지 않더라고요. 산이 주는 에너지를 듬뿍 받았죠. 오래 걸은 뒤 부은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 한 줄기. 예술이더군요.”

2주마다 산을 타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잊고 있던 다른 옛 친구들이 생각나듯, 몇 가지 보물을 그곳에서 재발견했다.

어려서부터 외톨이였던 그녀의 유일한 벗은 책이었다. 참 예민한 아이인데 책만 읽어주면 조용했다. 열 살 생일선물로 아버지가 사준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 30권을 다 읽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3일이었다. 잠도 필요 없는, 문학은 친구이자 탈출구였다. 최근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 임재범이 음악만이 유일한 친구였다고 했던 것처럼…. 그도 그랬다.

이렇게 생긴 문학에의 열정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됐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를 발표한 그는 2005년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10년이 넘는 무명의 바다를 항해해야 했다.

“작가가 되는 건 쉽지만 작가로 사는 건 어려워요. 자기 세계를 만들기가 너무 어렵죠.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가장 먼저 오만함이 없어졌어요. 저보다 못난 사람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지명도도 없고 밥벌이도 안 됐지만 버티고 또 버텼어요.”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채 공부했고,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은 데 대한 보상은 컸다. 역사를 소재로 삼는 여성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때 마음에 새겼다. 상처까지도 재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은 부록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난달 발간한 에세이의 제목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전쟁에 승리해 환호할 때 오만하지 않도록 하고, 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도록 위로하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오라”는 다윗왕의 명령에 고민하던 반지 세공인이 솔로몬을 찾아가 들은 해결책이다. 제목에 그의 인생과 가치관이 함축돼 있다.

자신의 상처 때문일까. 그는 치유, 회복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 초반부터 패배의식을 가진 희망 없는 젊은 친구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기독교의 제일 가치가 ‘사랑’이듯 어떤 상황, 어떤 위치에 있든 사람의 소중함은 불변하는 것이니까요.”

그의 에세이 ‘가족판타지’와 같은 작품은 설교 예화의 단골손님이다. “제 글을 통해, 또 제 글이 설교로 인용됨으로써 많은 사람의 마음에 위로를 주고 평안함을 준다면 참 행복한 일일 거예요. 함께 희망을 가지고 ‘이 또한 지나간’ 뒤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고 기도해 보자고요.”

글 조국현 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