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자, 덤벼봐!
입력 2011-05-25 17:59
누구든 살아가면서 몇 번쯤 혹독한 시련이나 역경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 강도와 내용과 횟수에 있어 저마다 차이가 있을 뿐, 시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그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자세가 다르다. 어떤 이는 삶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 시련에 만신창이가 돼서는 자포자기해 버린다. 누가 그 시련들에 맥없이 굴복해서는 패배자로 살아가고 싶을까.
당장 시련과 역경에 처해 있을 때는 끔찍하게 힘들다가도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올 즈음에는 삶의 비의를 깨닫고는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련과 역경 속에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튼실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 시련이나 역경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시련과 역경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불쑥 고개를 쳐들고는 우리의 발목을 걸고 함정에 빠트린다.
내가 힘들 때 누구와 얘기하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길지는 않지만 지나온 내 삶을 더듬어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 암울한 시간들을 돌파해낼 수 있었을까, 새삼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또 다른 시련 앞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시련을 피해 차라리 어디 먼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도망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도망쳐지는 것이든가. 그럴 때일수록 눈 똑바로 뜨고 맞짱 뜨듯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내 친구는 그럴 때마다 언니와 솔직한 대화를 한다고 했다. 지혜로운 친구의 언니는 그녀의 문제점을 짚어주며 나아갈 길을 이야기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복 받은 친구인가. 나는 그 친구가 부럽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점을 짚어주며 갈 길을 일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시련과 역경에서 좀 더 빨리, 그리고, 엽렵하게 탈출할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게 밝은 눈으로, 너른 마음으로, 다독여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럼 누구와 이야기할까. 마음속의 어둠과 우울과 천근같은 짐을 누구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의 든든한 백은 하나님
나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나에게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오로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강건한 마음으로 내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고 기도한다. 그래도 나의 어리석음과 미숙함 때문에 내 마음의 우울과 어둠들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 앞 교회 목사님에게 달려간다. 광주순복음 정석교회. 내가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나는 그 교회의 목사님에게 달려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좋은 일로 찾아뵈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 기도를 청하는 통에 목사님께는 참으로 미안할 일이다. 그래도 기도를 받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내 침침했던 눈이 밝아지면서 다시 싸워볼 힘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한데 그게 오랫동안 가면 좋겠지만 내 안의 아집과 고집 때문에 금방 갈 길을 잃고 만다. 그러면 나는 또 목사님을 찾는다.
한데 어느 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당신 역시 살아온 지난날이 그리 녹록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개척교회를 이끄시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와 찬송을 하신다고. 기도를 하다 보면 하나님이 왜 이 시련을 주었는지도 알게 된다고. 그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는 것이라고. 정말 그런가? 정말, 하나님이 나를 다시 하나님 앞으로 불러오기 위해 이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나는 자문하고, 또 자문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시련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나를 잡아주고 있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인간적으로 이해해주고, 기도를 해주시는 이광옥 목사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아프다. 육신은 물론이고, 마음의 상처도 깊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아픔도 말끔히 치유해 주시리라 믿는다. 내 든든한 백은 하나님이시다.
■ 은미희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1년 ‘비둘기집 사람들’로 삼성문학상을 받았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나비야 나비야’ 등 다수. 광주(光州)순복음교회를 섬긴다.
은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