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희윤] 반인륜범죄의 종합세트정권

입력 2011-05-25 17:41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는 지난 5월 16일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할 것을 명령함에 따라 친위부대가 저격수를 배치해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민간인을 사살했다”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과 군 정보국장인 압둘라 알 세누시 또한 체포영장이 청구되고 카다피의 부인 사피아와 딸 아이샤가 리비아 국경을 넘어 튀니지로 망명함으로써 카다피는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오캄포 검사의 신속한 대응으로 반인륜적 범죄자에 대한 국제사회 역할에 모처럼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상임이사국 간의 역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온 터라, 오캄포 검사의 대응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행동이라고 본다.

재판부가 영장 발부 여부를 검토해 결론을 내릴 예정이나,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한 결정이 기대된다. 국민보호원칙의 첫 적용사례로 남을 ICC의 이번 행동은 폐쇄국가와 사악한 독재권력에 대해 국제사회의 정의실현이 무엇인가를 확연히 인식케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ICC가 나서야 할 긴급사안

모처럼 국제사회의 심판자로 나선 ICC가 긴급히 행동해야 할 사안이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응징의 칼을 뽑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납치, 테러, 공개처형, 종교탄압 등의 만행을 일삼는 반인륜 범죄의 ‘종합세트정권’이다. 최근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등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사이버 해커들을 양성해 농협 전산망에 침투하는 만행을 일으켰다.

이미 2010년 12월 오캄포 수석검사는 천안함 폭침 등이 전쟁범죄 행위에 해당되는지 예비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의 이런 범죄 행위를 하루빨리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포함한 본조사가 조속히 진행돼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김정일-정은 부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돼야 할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10년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지난 2일 사살하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천명한 바 있다. 지난 13일에는 독일 법원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91세 남성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독일 검찰의 추적 끝에 유대인 대량학살에 가담한 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1992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세계적 규모의 문제들에 대해 국가가 충분히 대응하지 않을 때는 국제사회가 나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주창했다. ‘세계적 규모의 협동관리 또는 공동통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냉전 종결과 세계화 진전 등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거치면서 기존의 국가 중심적 국제관계를 대신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김정일 심판 위해 연대해야

향후 인권침해, 핵확산, 빈곤과 기아, 환경 문제 등 세계적 규모의 문제에 국가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할 때 국제사회는 방관하지 말고 서로 연대해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특히 반인륜적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끝까지 추적해서 단죄하고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그런 잔인하고 추악한 범죄가 다시는 지구상에 발붙이지 못한다는 교훈을 얼마 남지 않은 사악한 독재권력들에 명확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행동하고 있는 ICC가 카다피에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사회 희망과는 정반대로 정치범수용소 규모마저 대폭 늘리고, 봉건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공개재판 등 폭압정치를 통해 주민통제에 여념이 없는 김정일 정권에게 추상 같은 심판의 칼을 뽑을 것을 기대해 본다.

도희윤 반인도범죄조사委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