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南 좌익 실체 증언한 안병직 교수

입력 2011-05-25 17:39

서울대 안병직(75) 명예교수가 한국 사회 종북(從北) 세력의 뿌리라 할 1960∼70년대 학원 좌익운동에 대해 체험적 증언을 책으로 냈다. 한때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가였던 지식인이 당시 정황을 내부의 시선으로 증언하고 있어 가치가 크다. 안 교수는 62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빨치산 출신으로 인혁당 가담자인 경제학자 박현채를 만나 마르크스 경제학을 교육받았으나 후일 ‘중진(中進) 자본주의론’으로 이를 극복하고 좌익사상을 청산, 80년대 이념 논쟁에 적극 참여했던 원로 학자다.

안 교수 증언은 4·19 직후 남로당 계열의 사회주의 운동이 부활해 64년 자생적으로 조직된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결성된 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74년 제2차 인혁당 사건, 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이 일어났으며 관련자 처벌이 과한 점은 있었지만 수사기관 발표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실이라는 게 요지다. 이들 좌익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북한식 비(非)자본주의적 근대화 노선인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통혁당 사건 주동자 김종태가 처형되자 북한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주고 ‘국장(國葬)’을 치렀으며,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종태에게 포섭된 김질락은 ‘어느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옥중수기에서 통혁당의 북한 연계 활동을 자세히 언급했다. 그런데 김질락의 지도를 받아 서울대 조직의 핵심이 된 어느 인물은 출옥한 뒤 사회 일각에서 대단한 선비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뿐인가. 무장게릴라 활동자금을 마련한다고 금은방을 터는 강도질까지 했던 남민전 관련자 29명은 2006년 민주화운동 공로자로 인정됐다.

좌익운동은 민주주의 운동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숙주(宿主)로 노린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 진영은 과거의 좌익운동들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가 좌익에 오염되는 때가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