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영어통역 자원봉사 항암치료 중에도 나갔다… 김영한씨의 ‘재능 기부’
입력 2011-05-24 19:06
“가정법원에 처음 갔을 때 영어에는 자신 있었지만 재판 용어가 어려워 ‘디보스(divorce·이혼)’ 밖에 몰랐습니다. 통역이 없어 급히 불려나가 재판을 무사히 마칠 때면 그만큼 뿌듯함도 없더군요.”
9년 전 배터리 업체인 ㈜아트라스BX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다 퇴직한 김영한(66·사진)씨는 요즘 1주일에 한 번 정도 서울가정법원을 찾아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한다.
최근 다문화가정 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 서울가정법원에서는 2009년 7월부터 영어 중국어 일어 등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씨는 미국과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에서 온 신청자의 이혼신청서 작성과 조정 과정에 참여한다. 2년이 채 안 됐지만 통역을 제공한 건수는 40회가 넘는다.
한번은 50대 필리핀인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신청서를 작성해주자 이 여성은 “몇 달러 드리면 되느냐”고 물었다. 김씨가 “저는 자원봉사하는 사람이라 돈을 받지 않는다”며 거절하자 매우 고마워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4월 대장암 수술을 마친 뒤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항암주사를 꽂은 채 가족 몰래 자원봉사를 했다. 그는 “봉사활동 스케줄이 잡혔는데 다른 일을 하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항암주사를 꽂아 당시 속은 좀 메스꺼웠지만 스케줄이 잡혀 안할 수 없었다”며 봉사활동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전했다.
김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 때다. “퇴직하면서 사회에 뭔가 ‘리턴(보상)’을 하고 싶었다. 마침 월드컵을 맞아 통역봉사원을 모집했어요. 토익 성적표도 없어 여권의 출국일자를 들이밀고 시험을 쳐 서울시 자원봉사 요원이 됐지요.”
그는 당시 고속터미널 안내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뒤 이태원, 운현궁, 남산 한옥마을에서 자원봉사를 계속했다. 서울시에서만 3349시간 자원봉사를 했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활동했고 오는 9월에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의 자원봉사도 예정돼 있다. 김씨는 “봉사활동을 안 했으면 친구들과 등산을 다니고 막걸리나 먹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때 다 비우고 가는데, 국가적으로 손해고 개인적으로도 창피하지 않으냐”며 자원봉사를 권했다.
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와 통역장교를 거친 김씨는 미국 뉴욕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4∼5년 일하는 등 무역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그는 서울 반포교회 안수집사이기도 하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