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민영화 시기상조… 내실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

입력 2011-05-24 21:37

현장 중시로 이례적 성과… 기업銀 첫 내부승진 조준희 행장

여기 ‘이상한’ 은행이 하나 있다. 민간, 국책 금융기관을 불문하고 부는 인수·합병(M&A) 열풍 속에서 숙원이던 민영화 작업까지 미룬 채 ‘하던 은행일이나 잘하자’는 은행. 그런데 지난해 공룡 금융지주들을 제치고 순이익 업계 2위(1조2901억원), 직원 1인당 수익성 1위(1억8100만원), 순이자마진(NIM) 공동 1위(2.77) 등의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바로 기업은행이다.

이런 실적을 기반으로 지난해 말 기업은행은 처음으로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승진 행장을 맞았다. 전략기획통인 조준희 행장은 취임 후 민영화, 지주사 전환 등을 뒤로 하고 기업은행의 기질을 밑바닥부터 다시 다지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만난 조 행장은 지주사 전환 문제와 관련해 “현재 금융지주 체계는 지나치게 주력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타 계열사가 은행의 역량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 행장은 “세계적으로 M&A의 성공 사례를 보면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먹는 경우는 없다”면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한 것처럼 내실 있는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먹었을 때 M&A의 시너지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민영화 작업을 늦춘 데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은 아직 계열사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며 “중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지 무리하게 민영화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순서가 틀리다”고 말했다.

이날 조 행장은 기업은행 담당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그런데 장소가 여느 호텔의 고급 식당이 아닌 인천 남동공단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공장을 둘러본 뒤에야 조 행장을 만날 수 있었다.

조 행장은 이에 대해 “몇 십억 자산을 가진 ‘알부자’ 사장이지만 사무실은 컨테이너 한 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면서 “은행원이나 애널리스트가 사무실만 찾아다니면 숨겨진 최첨단 공장(현장)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행장 수행비서 시절 전국의 공장을 수없이 돌아봤다고 했다. 행장 취임 후에는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며 단어 첫 글자를 딴 ‘우문현답’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은행이 내세운 현장 중심주의의 실적은 놀랍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지난해 타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중소기업 대출을 회수했다. 반면 기업은행은 지난해 은행업계 전체 중기대출 순증액 19조3000억원의 91%(17조6000억원)를 홀로 지원했다. 그렇다면 대출 회수는 어떨까. 지난 1분기 기업은행의 연체율은 0.8%(업계 2위)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순익도 기대치를 뛰어넘은 5672억원을 기록, 역시 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조 행장은 “현장 노하우를 살린 공격적인 중기대출 확대가 결국 높은 수익률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의 숙원이었던 첫 내부 승진 행장이다. 후계 양성체계를 물으니 “그건 인사권자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부 출신 행장 세웠더니 잘하더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 다음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겁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