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고향의 봄’ 서지학
입력 2011-05-24 17:48
우리 국민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노래는 무엇일까. 무게로 따지면 ‘애국가’가 있고, 역사로 따지면 ‘아리랑’이 손꼽히겠지만 친근함으로 치면 ‘고향의 봄’이 아닌가 한다. 4분의 4박자 쉬운 가락에 16마디 짧은 곡, 그리고 서정적인 가사.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노래이기에 동포들이 만나는 자리에는 으레 이 노래가 나온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으로 널리 알려진 ‘고향의 봄’이 세 가지 버전으로 불려온 사실이 밝혀졌다. 홍난파 이전에 이부근이라는 사람이 먼저 작곡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29년 통영에서 발간된 동인지 ‘노래동산’에 지역예술가 이부근의 곡이 실린 것을 음악연구가 김연갑씨가 찾아냈다. 기존에 이미 알려진 ‘산토끼’의 작곡자 이일래 것까지 합치면 세 개의 ‘고향의 봄’이 만들어진 셈이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1926년 4월 이원수가 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시 ‘고향’에다 이부근이 1929년 5월, 홍난파가 같은 해 10월, 이일래가 1938년에 곡을 붙였다.
노래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제목은 이부근과 이일래가 ‘고향’이라는 원제를 사용한 반면 홍난파는 ‘∼봄’을 붙여 변화를 줬다. 곡의 경우 이부근은 민요풍, 이일래는 서양가곡의 분위기인 데 비해 홍난파는 일본화된 서양음악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순수한 가사에 걸맞게 소박하고 대중적인 운율을 그려 넣은 홍난파의 것이 적자생존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가사에서 자주 시비에 오르는 것이 ‘나의 살던 고향’이라는 부분이다. 어법으로 따지면 ‘내가 살던 고향’이 맞다는데, 당시 관행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라는 이사야서 말씀을 ‘내가 기뻐하는 금식∼’으로 바꾸면 느낌이 달라진다.
‘고향의 봄’의 두툼한 서지(書誌)를 보면서 더욱 놀라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왕성했던 문예 활동이다. 통영에서 ‘노래동산’이라는 동인지를 냈다는 사실은 예향의 오랜 전통을 다시금 일깨워 주거니와, 누런 종이에 오선보와 번호악보를 정성껏 기록한 음악가의 창작열 또한 뜨거웠다.
이렇게 고운 우리 노래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시골에서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던 추억이 있어야 노래 속의 그리움이 간절해지는데 그런 공유의 경험을 가진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도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나중에 ‘고향의 봄’ 대신 쓸쓸한 너의 ‘아파트’를 함께 부를지 모르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