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진실로 행복하려면

입력 2011-05-24 18:45


잠언 15장 16∼17절

며칠 전, 생각만 해도 미소가 떠오를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지인(知人)과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은행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몇 년 전 퇴직하고 지금은 서울 목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어디 돈 많이 버셨나요”라고 했더니 “예, 사람 섬기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라는 의외의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 그것은 철학입니다. 멋있네요”라고 말하자 성경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지요”라고 이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속에서 희열이 솟는 느낌과 함께 “행복은 행복 자체를 쫓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옛 명언을 생각했습니다.

복과 행복은 다르지요. 복을 많이 받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건강의 복, 명예의 복, 재물의 복 등은 나름대로 가치 있고, 그 가치가 문화를 창조하고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소유했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욱 가치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말씀 한 마디로 만드셨지만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직접 흙으로 형체를 만드셨고, 결정적인 것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인간만이 정신적이며, 영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는 정신, 나아가 영적인 부분이 만족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라별 행복지수가 있습니다. 언제가 영국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행복한 나라 1위는 경제적으로 부강하거나 복지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라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였고, 2위는 콜롬비아, 3위는 코스타리카 순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구멍 때문에 존재론적인 불안과 절망을 느낍니다. 이러한 불안과 절망은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없고 엄마 품에 안길 때 만족할 수 있는 것같이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만이 인간은 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생의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을 통해 참 행복을 경험한 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서 느끼는 행복’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행증(Euphori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근거 없는 병적인 행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순간적인 기쁨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삽니다. 행복의 조건들이 마치 행복인 것처럼 느끼는 병적인 현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뿌리 없는 꽃처럼 잠시 후에는 시들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지혜자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6:16)고 말했습니다. 재산이나 환경의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뿌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17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릇의 가치는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평가됩니다.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통이 되는 것이요, 보석이 담기면 보석함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나요. 여호와를 섬기는 믿음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을 담으십시오.

김동걸 목사 (돈암동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