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5-24 17:32


하나님 원망하는 잘못된 습관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이 신뢰가 곧 믿음이다. 그런데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행동이 평소의 말과 다를 때가 많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중적 신앙은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금방 드러난다. 문제가 올 때 ‘큰일 났구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당황하는 것은 평소에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할렐루야, 이제 주님이 일하실 때가 왔구나.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한다.

교회 성도 중에 친척을 어렵게 전도한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남편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쓰러지고,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니 교회에 계속 다니면 앞으로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는 교회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한다.

영적으로 볼 때, 한 가정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생겼으니 대대로 그 가정을 장악하던 악한 영들이 그 가정을 떠나야 하니까 못 견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견뎌낼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전도한 사람이 아무리 성경의 예를 들어가며 영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예수를 잘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충성했는데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라고 원망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나름대로 걱정이 크겠지만 왜 그 불행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과연 이 사람이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성경 역사 속에는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고의적으로 고통을 주신 사실이 없다. 주님은 우리의 불행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다. 우리의 불행을 뒤집어쓰고 죽으신 그분에게 우리의 불행을 또 뒤집어씌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바로 마귀, 사단, 귀신이 죄를 통해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안 되거나 무슨 일을 하다가 좌절되거든 즉시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어 나를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마귀의 수작이구나!’라고 깨닫고 “악한 사단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라고 기도하며 이겨야 한다.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원망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불신앙이다.

한마디로 그런 환경을 만들어 하나님께 모두 뒤집어씌워서 결국은 우리를 무너지고 넘어지게 만드는 마귀의 고등 수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런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바꿔 생각해야 한다. 어떤 문제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거든 이제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 믿음을 보일 수 있는 기회, 주님이 역사하실 신령한 기회가 왔다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을 이겨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든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복된 사람이요,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일 것이다.

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