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 속 세상] 현란한 마술의 세계 ‘女 매지션’ 꿈과 행복을 전한다

입력 2011-05-24 17:27


그녀들이 가녀린 손끝을 한번 오므렸다 펴면 꽃이 피어나고, 카드의 숫자가 바뀌고, 비둘기가 날개를 편다.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나 속임수에 속지 않겠다며 눈을 부릅뜨고 관찰하는 사람 역시 미녀 마술사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고혹적인 눈빛에 어느새 그녀들이 초대하는 마법의 성으로 빨려들고 만다.

방송, 연극,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문화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매지션(magician). 우리나라에는 200여명, 마술강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3만명이 넘는다. 이 중 여성마술사는 대략 20명 내외.

넘치는 끼와 열정으로 무대를 사로잡는 매지션들에겐 본인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부와 명예가 따르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마술사에 대한 편견과 늘 새로운 마술을 개발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성 매지션의 중심에 정은선 한국마술협회 이사장이 있다. 정 이사장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대에서의 한 번 실수는 마술사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 역시 마술을 배우기 시작할 당시 집안의 반대가 심해 본인의 이름조차 사용하지 못했다. 마술 선진국인 독일을 비롯해 유럽 각국을 오가며 카드마술, 동전마술 등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클로즈업 마술’에서 규모가 큰 ‘일루전(illusion) 마술’까지 다양한 마술을 익힌 정씨는 80, 90년대 한국에서 최고의 마술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08년 정씨는 그녀의 전 재산을 들여 서울에서 세계마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마술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세계마술협회 아시아지부를 한국에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정 이사장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손재주는 세계적이다. 볼거리가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미녀 마술사의 공연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상설 마술공연장’ 설립에 정부와 대기업의 관심을 당부한다.

남성 못지않게 탄탄한 실력과 많은 팬을 보유한 이들은 여성 마술사로 따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꿈과 행복을 전달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5월을 보내고 있다.

사진·글=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