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8군 보고서 캠프 캐럴 기지 조사] 괴소문에 떠는 왜관 주민들
입력 2011-05-23 21:53
“암환자 많다” “다른 독극물도 묻혀있다”
“조금이라도 건강에 위험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선 안전조치부터 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환경단체 관계자) “지하수가 위험하다면 이 물을 식수로 쓰는 미군들부터 이 물을 못 먹게 하겠지요. 엄밀한 조사를 한 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데이비드 폭스 미8군 기지관리사령관)
현지 주민대표와 환경단체 관계자를 포함한 민·관 합동조사단이 23일 고엽제가 묻혔던 것으로 알려진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기지 캠프 캐럴 내부를 답사했다. 캠프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장 브리핑은 과거 미군이 캠프 캐럴에서 진행했던 유해물질 반출 및 처리 작업에 대한 미8군 측의 브리핑과 조사단이 그 작업이 이뤄졌던 영내 주요 지역을 자세히 돌아보는 식으로 진행됐다. 브리핑은 오후 2시 시작해 애초 예정했던 2시간을 훨씬 넘어 오후 5시쯤 끝났다.
미군은 1978년 살충제, 제초제, 솔벤트 등 유해물질을 적치했다고 설명한 부대 남쪽의 41구역, 주한미군 관계자들이 고엽제를 묻은 장소로 지목한 부대 동쪽 헬기장, 미군이 매립된 유해물질을 1980년 반출한 곳이라고 설명한 헬기장 인근 D구역을 차례로 공개했다.
관심의 초점이 된 곳은 헬기장이었다. 과연 고엽제를 묻었는지, 헬기장에서는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 헬기장을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등 질문이 쏟아졌다. 헬기장은 부대 다른 지역보다 10∼20m 높은 언덕지대에 있어 고엽제 매몰로 고도가 높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곳이다. “왜 이렇게 헬기장을 높은 곳에 지었는가”라는 질문에 폭스 사령관은 “헬기장은 통상적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장애물이 없는 곳에 짓는다”고 말했다.
하필 79년에 41구역의 유해물질을 D구역으로 옮긴 것이 그 무렵 미국 뉴욕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240여 가구 주민을 이주시킨 사건과 연관성이 있느냐는 환경단체 관계자의 질문에 폭스 사령관은 “개연성은 있으나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칠곡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암환자가 많다’ ‘다른 독극물도 묻혀 있다’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특히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립 의혹 지역에서 2004년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미군 측의 공식 발표가 나오면서 주민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캠프 캐럴 담장 바로 옆에 있는 석전1리 주민 박모(69)씨는 “지난해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지하수를 마셨기 때문에 걱정이 더 크다. 자식과 손자가 모두 인근에 살고 있어서 더 불안하다”며 “하루빨리 잘잘못을 가리고 주민 안전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대 인근의 한 주민(80)은 “며칠 전에도 상수도가 끊겨 부대 인근 마을 복지관 취수장에서 지하수를 떠 식수로 사용했는데 걱정이 크다”며 “얼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 환경·시민단체들은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한·미 공동 전면조사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한미군사령관의 사과, 미국 대사의 유감 표명, 환경정화 비용 및 피해보상 부담, 한·미 공동 전면조사, 재발 방지를 위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이 사건은 환경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중대 범죄”라며 “SOFA 환경 조항에 근거한 공동 조사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칠곡=최일영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