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빚 1조2000억… 보상 안되면 죽음뿐” 5년째 토지보상 지연 자살 속출하는 파주 운정3지구

입력 2011-05-23 18:09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동태리 파주운정3지구 수용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곳곳에 근조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비대위 사무실에 내걸린 ‘운정3지구 보상약속 정부는 즉각 이행하라’, ‘즉각 보상이 아니면 죽음으로 결사항쟁’,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나라가 아니다’ 등의 문구가 주민들의 비장한 각오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 마을에 사는 30대 남자는 “이미 지난해 이자를 견디지 못한 40∼60대 가장 7명이 세상을 떴다”며 “이번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농민은 보상받을 액수(13억2000만원)보다 빚(15억원)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2006년 지구 지정 이후 5년째 토지수용이 지연되면서 부채를 견디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아 제2, 제3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지지 않을까 주민들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유서를 통해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힘들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빨리 보상해 주세요. 또 다른 희생자가 없게”라고 썼다.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사례는 지난해 183건의 경매현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48건의 주민재산이 경매를 통해 남의 재산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경매도 21건에 이르고 있다. 2009년 보상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받은 주민들이 3년이 지나도록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수(49) 비대위원장도 마찬가지 신세다. 박 위원장은 2008년 6월 공장 6동 중 1동을 증축한 뒤 더 이상 공장신축을 못하게 함에 따라 지구 외 지역에 공장부지 등을 마련하기 위해 60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토지 수용이 안돼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이자는 매년 불어났다. 박 위원장은 매달 7000만원씩 지난 3년간 이자만 20억원을 냈고, 현재 사실상 파산상태다.

운정3지구 주민들이 제2금융권에서 차입한 돈은 8000억원이며, 총 부채는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다른 사업장과 비교할 때 6배가량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주민들은 “운정3지구의 특성상 군사보호구역 해제의 행정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2년가량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발표한 약속을 믿고 대토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6000억원가량이 이자로 빠져나가 주민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주민 300여명은 24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 LH를 찾아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운정3지구의 토지주를 위해 대통령과 LH 사장 앞으로 쓴 유서를 낭독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LH 측에 운정3지구 사업추진에 대한 세부일정과 보상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파주=글·사진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