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소극장 투어 나서는 이승환 “난 아직 팔팔… 한물갔다는 말 듣는 건 너무 싫어”

입력 2011-05-23 21:33


‘라이브의 황제’ 같은 진부한 표현이 아닌 다른 말로 이 가수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할까. ‘발라드로 돈 벌어서 록으로 까먹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줏대 있게 음악을 만들어온 뮤지션. 음반이 안 팔리는 시대에 고품격 사운드를 지향하며 남들보다 3∼4배 많은 제작비를 음반에 쏟아 붓는 사람. 그래서 숱한 후배 음악인들로부터 존경 받는 가수. 웬만해선 TV에 출연하지 않고 ‘콘서트의 힘’ 만으로 정상급 인기를 유지해온 인물. 그는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라이브의 황제’라고 표현하게 되는 가수 이승환(45)이다.

1989년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22주년을 맞은 이승환은 그동안 올림픽 체조경기장 등 수만명을 수용하는 장소에서 블록버스터급 콘서트 문화를 선도해왔다. ‘불쇼’와 ‘물쇼’, 각종 특수효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관객을 압도했다. 이랬던 그가 별안간 전국 소극장 투어에 나선단다. 갑자기 웬 소극장 공연일까. 의아한 마음에 이승환을 찾아갔다. 지난 20일 서울 성내동에 있는, 그가 운영하는 기획사 드림팩토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나는 팔팔하다. 하지만…

-소극장 투어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올해는 원래 공연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연기획사 ‘무붕’의) 이재인 대표의 부추김도 있었고, 그냥 즉흥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하겠다고 결정하니 대관도 빨리 되더라고요. 즉흥적으로 뭔가를 결정해서 할 때 결과물이 좋았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 공연도 그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동안의 대형 콘서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뭘까요.

“아무래도 음악 중심으로 공연이 진행되겠죠. 이번에는 ‘이승환 더 리그레츠(the Regrets)’라는 7인조 밴드와 함께 무대에 섭니다. 예전에도 무대에 밴드는 있었지만 세션의 느낌이 강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한 팀으로, 밴드의 이름으로 공연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번 투어의 타이틀은 ‘팔팔한 미스타리의 은밀한 외출’이다. 다음달 12일부터 오는 9월 중순까지,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 서울 전주 원주 안산 대전 인천 광주 제주에서 열린다. 서울 공연은 6월 23일부터 7월 3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400석 규모의 서울 동숭동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진행한다.

‘팔팔한 미스타리’라는 문구를 붙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붙인 제목이라고 했다. “팬들한테서 ‘이승환 성량이 이제 별로야’ ‘체력이 한 물 갔어’ 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어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팔팔한 미스타리’라고) 붙인 거예요.”

이어 “나처럼 나이 많은 뮤지션은 신곡 발표해도 잘 안 돼서 새 노래를 발표 못 하니까 공연을 통해서라도 팬들에게 들려드리고 싶다”며 공연에서 신곡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곡을 발표해도 잘 안 된다’는 그의 말이 엄살인지 겸손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밖에도 그는 ‘나의 인지도는 떨어지고 있다’ ‘나는 내리막길이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아가 최근 2∼3년 가수로서 그의 ‘실적’도 나열했다. 지난해 발표한 10집 ‘드리마이저(Dreamizer)’는 적자를 봤다. 최근 연말이 아닌 연중에 연 공연은 객석을 다 채우지 못했다. 11집 발매는 기약이 없다….

이승환이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2000년대 들어 그가 느낀 무력감 때문이다.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면서 무너진 음반시장, 아이돌 그룹을 양산하는 거대 기획사로 넘어간 가요계의 주도권, 이로 인해 뮤지션의 도전과 실험은 홀대 받는 현실….

과거 그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음악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는 뮤지션은 감소하고 엔터테이너들만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는 식의 쓴소리를 자주 내뱉었다. 그는 “잘못된 현실에 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다시 (과거에 했던 발언과 같은)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추억을 팔기는 싫다

자기비하로 까지 비쳐지는 그의 솔직한 발언은 그가 그만큼 자신의 음악과 공연에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아무리 자신을 깎아내려도 충성을 다하는 팬이 있고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없이 겸손한 모습을 보이던 그도 ‘이승환 콘서트’의 평점을 매겨달라고 주문하자 90점이라고 자평했다.

이승환은 “대학생 때 들국화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꾸게 된 만큼, 데뷔한 이후에도 (콘서트를 통해 인정받는) 그런 경로를 걷고 싶었다”며 “공연을 할수록 팬들의 기대감은 커지고, 이에 비례해서 나의 사명감도 커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뿐만이 아니라 그는 음반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반제작에 5000만원 정도 들었던 95년 당시, 4집 ‘휴먼(HUMAN)’을 만들며 그는 남들보다 10배 많은 5억원을 썼다. 미국의 유명 편곡자 데이비드 켐벨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이 음반을 시작으로 그의 작업에 참여했다.

“대중들은 사실 추억을 파는 가수를 좋아하죠.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계속하는, 익숙한 음악을 계속 들려주는 가수가 인기가 높죠. 그런데 저는 추억이 아닌 ‘현재의 나’를 팔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새로운 음악,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 데 투자를 계속 하게 돼요. 진정한 저의 팬은 그런 저의 모습을 좋아해주는 것 같고요.”

20년 넘게 콘서트로 단련된 그의 실력을 방송에서 자주 볼 수는 없는 걸까. 특히 요즘 화제의 중심에 있는 MBC ‘나는 가수다(‘나가수’)’에 출연할 의향은 없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9월 중순까지는 콘서트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출연 여부는 막상 (출연할 수 있는) 상황이 닥쳐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가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처음 방송을 봤을 땐 동료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느낌을 받아서 별로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좋게 보고 있습니다. 실험적으로 편곡된 음악을 대중이 듣게 되면서 새로운 형식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학습효과’도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물론 부정적인 영향도 있겠죠. 경연이다 보니 소박하고 담담하게 감동을 전하는 음악이 없잖아요. 개인적으로 저한테 누가 노래 잘하는 가수냐고 물으면 전 윤상이라고 말하거든요.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특유의 정서를 전하는 보컬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윤상 같은 가수는 ‘나가수’에 어울리지 않잖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