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강렬] 양저우(揚州)
입력 2011-05-23 17:31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중국을 방문 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동북 3성을 돌아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처음 머문 곳이 양저우시다. 인구 450만명의 양저우시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의 고향이다. 지난 1991년 김일성 전 주석이 장 전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양저우에서 20년 전 다녀간 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저우는 금세기에 이르러 상하이(上海)나 난징(南京) 등에 밀려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가 되었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전국 제1의 도시였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손권과 손책이 다스리던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 때는 외국무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나라때 신라, 일본, 류쿠(琉球)열도 사람들이 입국을 하려면 이곳에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해상왕 장보고도 이곳을 통해 당에 입국해 활동 했다는 기록이 있다.
양저우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인물이 신라 사람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다. ‘해동성인’ ‘한중문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그도 양저우를 통해 중국에 입국을 했고 이곳에서 오래 활동을 했다. 그는 신라 경문왕 때인 868년 12살 에 당나라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아마 한국 최초 조기유학생일 것이다. 그의 부친 최겸일은 유학길에 오르는 아들을 배에 태우며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나를 아비라 부르지 마라. 나도 너를 아들이라 여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나라에서 공부한 지 6년여 만에 외국인 대상 특별과거인 ‘빈공진사과’에 장원으로 합격을 했다. 신라와 발해, 일본 출신 유학생들이 경합을 벌였으며 신라 유학생들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서기 820년부터 906년 사이 빈공진사과에 합격한 신라 유학생은 58명에 달했다. 고운은 과거에 합격한 후 양저우 등지에서 10여년간 중국관리로 봉직하며 1만여 편에 달하는 글을 썼다.
양저우시는 한·중 교류협력의 상징적 인물인 최치원 선생을 기려 2001년부터 대규모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양저우시 풍경구 내에 최치원 기념관 준공식을 가졌다. ‘21C 한중교류협회’도 한국 고유 건축양식의 수교 15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양저우는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머문 곳이지만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