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목사의 행복 칼럼] 행복in-행복人-행복印 (8)

입력 2011-05-23 10:01


육체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대에게

현대는 정신의 하위개념에 불과하던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는 용서해도 뚱뚱한 것은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까지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얼굴에 칼을 대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체와의 전쟁이 선포되었습니다. 육체와의 전쟁을 벌이는 이 새로운 인간형을 ‘연기하는 자아’라고 합니다. 연기하는 자아는 시각 이미지가 등장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영화와 대중 인쇄매체,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과 광고의 ‘융단 폭격’은 언어의 시대를 이미지의 시대로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 소비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정식이 태어났으니 젊음은 곧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건강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자기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고, 젊음을 지속시키는 노력이 사회적 성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술을 해서라도 예쁜 얼굴을 갖고자 몸부림을 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신세대들이라 일컬어지는 청소년들은 아예 성형수술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성인들에게까지 크게 확장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성형수술만 하면 비너스처럼 변신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입니다.

호머와 밀턴은 눈 먼 시인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귀가 멀어 천둥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그는 그의 영혼으로 음악을 만들었고, 그 음악의 위대성은 오늘날까지도 칭송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곱사등이였고 로마 교황 알렉산더도 그러했는데 그는 더욱이 매우 고통을 겪고 있는 병약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야릇한 모습의 난쟁이였는데 이로 인해 야비한 적들로부터 ‘3큐빗(약150cm정도)의 키’라고 조롱을 당했으나 성 크리소스톰은 그에 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별들을 만진 사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호라티오 넬슨과 나폴레옹도 신장에 있어서는 그와 같았습니다. 셰익스피어도 그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절름발이였으며 스콧, 바이런, 캘빈도 모두 신체적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사랑, 이렇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1. 나 자신을 위해서 꽃을 산다.

2. 날씨가 좋은 날엔 석양을 보러 나간다.

3.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집안 곳곳에 뿌려 둔다.

4. 하루에 세 번씩 사진을 찍을 때처럼 환하게 웃어본다.

5. 하고 싶은 일을 적고 하나씩 시도해본다.

6. 시간 날 때마다 몰입 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 만든다.

7. 음악을 크게 틀고 내 맘대로 춤을 춘다.

8. 매일 나만을 위한 시간을 10분이라도 확보한다.

9. 고맙고 감사한 것을 하루 한 가지씩 적어 본다.

10. 우울할 때 찾아갈 수 있는 비밀장소를 만들어둔다.

11. 나의 장점을 헤아려 본다.

12. 멋진 여행을 계획해 본다.

13. 내일은 오늘보다 무엇이 나아질지 생각한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시 22:10).

가족생태학자·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