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 골프(91)

입력 2011-05-23 10:05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매 샷을 다 기록하는데, 현재까지 라운드가 몇 번이고, 라이프 평균타는 얼마나 되는지 알겠네요?" 라운드 중에 열심히 기록하는 나에게 몇 년 전에 동반자가 농담 삼아 물었다. "네, 오늘이 1208번째 라운드이고 라이프 평균타는 84.45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혹시 농담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이 아니었다. 컴퓨터에 그 기록이 다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1989년 9월 골프 입문시까지 나는 평생 단 한가지 종목도 반 대표 또는 부서 대표로 뛰어 본 적이 없는 운동의 둔재였다. 그래서 남들만큼 칠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기초를 잘 닦으며 또 성실히 연습하고 그 내용을 잘 알아야 했다. 그래서 프로가 가르쳐 준 내용을 메모하면서 숙지하였고 나중에는 메모한 레슨 내용을 정리하여 프로에게 건네자 깜짝 놀라며, 후일 레슨 서적을 함께 출판해보자는 제의까지 받았다.

1990년 4월 10일 처음으로 18홀 라운드를 돌았으나, 어떻게 시작하고 끝났는지 정신이 없었는데, 머리를 얹어준 선배가 108타를 쳤다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 첫 라운드의 스코어 카드를 본 적이 없었다. 첫 라운드의 스코어카드를 간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그 후 나는 첫 라운드 카드에 기념으로 서명해서 머리 얹은 사람의 손에 꼭 쥐어 준다.

지금까지 나는 1,430회의 라운드 기록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잘못 된 것은 바로 잡고, 잘 하는 것은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내 자신의 골프를 잘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입문 후 처음 10번의 라운드는 100타를 넘었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19번째 라운드에서는 85타를 기록하였고, 74번째 라운드에서 대망의 79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날의 골프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써있다.

1"1991년 11월 2일(토) 11:42, 태광 CC, 맑음. 조일O, 신OO 정OO 동반.

2컨디션이 좋지 않아 무리하지 않게 스윙 한 것이 주효. 처음으로 79타 기록.

3드라이버 14회 중 2번 실수, 11회 200미터 이상 안착. 페어웨이 키핑 80%

44번 우드 사용 5번 모두 성공.

5아이언 샷 거의 실수 없었음. 그러나 8번, 9번 사용은 약간 미숙했음

7마인드컨트롤에 실패 두 번 티 샷 실수, 뒷 팀이 시끄럽고, 앞 팀의 지연 플레이가 원인.

1011번 홀 숲 속 세컨 샷 무리하지 않고 5 아이언으로 130미터 레이업 파 세이브 한 게 중요한 고비였음.

12전반 38 후반 41, 버디 2 파 9, 보기 5 더블 2,

16(파3) 13/12 평균3.25타, (파5) 18/20 4.5타, (파4) 48/40 4.8타"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라운드에서는 98타를 쳐서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9)

이렇게 나의 다이어리는 스코어 카드 수집과 함께 95년까지 계속 되었고, 그 이후에는 내가 만든 스코어 카드에 적은 모든 기록을 컴퓨터에 저장함으로써 언제나 항상 기록 분석이 가능하여졌다. 물론 통계 작업을 위하여 컴퓨터를 배우러 새벽에 학원에 나가기도 했다. 내가 만난 아마추어들은 십중팔구 자신의 골프에 대한 그릇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잘 맞은 250야드 티샷이 마치 평균 비거리인 양 착각하고, 1년에 한 번 하는 벙커에서 파 세이브도 수시로 한다는 오해를 한다. 아이언 샷 거리가 프로급이라고 자랑하면서 파3홀에서는 늘 짧아서 전방 벙커에 빠지고, 우드로 200야드 해저드는 가볍게 넘긴다고 우쭐대다가 수시로 연못에 빠뜨린다. 도무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니, 적은 커녕 자기 자신도 모르는 형국이 되어 "혹시가 역시로 끝나는 골프"가 되고 만다.

역사를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처럼 골프도 역사를 알아야 견고해진다. 골퍼들이 스코어 카드를 꼭 챙기고, 티샷은 몇 번이나 페어웨이를 지켰는지, 퍼팅은 몇 개를 했는지, 레귤레이션 온그린(파 온)은 몇 번 했는지, 왜 터무니 없는 실수를 연거푸 했는지 같은 것만 꾸준히 기록해도, 무엇이 강점이며 자신이 무엇에 취약하고, 어디서 공격하고 어디서 수비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훈련을 계획할 때에도 막연하게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 가능한 방법을 찾게 되니 결국 기록(記)을 하면 기획(企)이 쉽고, 기본(基)을 충실하게 하여 기술(技)이 늘게 되는 것이다.

골프 다이어리를 쓰면 기술적인 것 외에도 언제 누구와 어디서 라운드를 하였으며 또 그 때 특별한 추억은 무엇이었는지 기록할 수 있어, 비즈니스는 물론 친선 골프 때에도 동반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됨으로써 호평을 받게 된다. 보험업계 대 선배인 P회장은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늘 스코어 카드만을 상자 속에 잘 보관하는데, 라운드 할 때 "김사장, 지난 번 이 홀에서 멋지게 붙여서 버디를 했지?"하며 좋은 추억을 일깨워주는 멋진 매너로 동반자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다.

P 회장은 과거의 동반자들과 다시 라운드 할 때에는 꼭 옛 기록을 살펴보고 나간다.

골프 다이어리, 그 것이 실력과 매너를 함께 키우는 왕도가 아닐까?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사 30:8)

<골프칼럼리스트 김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