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부동산·저금리에 실망… 강북 전통부자들 고수익 금융상품으로 눈돌린다
입력 2011-05-22 18:17
“강남 부자들은 빠른데, 강북 부자들은 엉덩이가 무거워요. 강남 돈이 ‘스마트 머니’라면, 강북 돈에는 고집과 철학이 있다고나 할까요?”
21일 서울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 ‘삼성증권SNI서울파이낸스센터’ 상담실에서 만난 이이천(31) PB(프라이빗 뱅커)는 강남과 강북 부자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그는 “강남 부자들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시장보다 한발 앞서간다면, 강북 부자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투자한다”고 했다. 강남 부자들이 고수익을 좇아 주식 등 위험자산에 발 빠르게 투자한다면, 강북 부자들은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에 돈을 오래 묻어두는 식이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얘기다.
그런데 이 PB는 “요즘 강북 부자들도 고수익 금융상품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지난 3월 말 강북지역에 처음 문을 연 이곳에 강북 부자 350여명이 투자를 위해 맡긴 돈이 무려 4830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강남지역 두 곳의 초우량 고객(VVIP) 지점에 모인 돈은 합쳐서 733억원에 불과했다.
유직열 서울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강북지역에 처음 오픈한 효과도 있겠지만, 보수적인 강북 부자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맡길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부동산 시장의 매력이 떨어진데다, 실질금리도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예금을 선호하던 이들도 새로운 투자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탁자금만 30억원을 넘는 서울 성북동과 평창동의 ‘전통적인 부자’들이 이 지점의 주요 고객. 대부분 의사·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고, 옛 고관대작의 후예, 대기업 회장 등도 있다. 이 PB를 포함해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보유한 베테랑 PB 10명이 이들 강북 부자 350여명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
위험자산 투자가 대부분인 증권사에 돈을 맡기긴 했지만 강북 부자들의 투자성향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이날 지인의 추천으로 증권사 PB센터에 처음 왔다는 40대 여성 투자자는 “수익률이 높다고 해도 위험성이 큰 상품은 꺼려져서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최대 연 20∼30%의 고수익률로 강남 투자자들을 매혹시켰던 랩어카운트·압축펀드 등은 강북에서 인기가 덜하다. 이 PB는 “강남이 10억 중 5억∼6억원을 랩어카운트에 투자한다면 강북에서는 3억쯤”이라며 “강북 부자들은 연 수익률 8∼13% 정도의 안정적인 ELS(주가연계증권)·재간접 헤지펀드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알짜 부자’로 통하는 강북 부자들은 부유한 티를 내지 않는다. 이 지점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박아람(24·여)씨는 “대기업 회장 사모님들의 머리 모양이나 구두, 가방에서는 오히려 검소함이 묻어난다”며 “한 기업체 회장님은 허름한 비닐점퍼 차림으로 건물에 들어서다가 경비원들에게 제지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말했다.
소탈한 강북 부자들이지만 함께 일할 PB를 고를 때만큼은 무척 깐깐하다. 지난달 70억원을 맡긴 한 부자는 PB를 추천해 달라며 ‘여자 PB는 안 된다. 남자 PB 중 고향이 안동인 사람, 안동 권씨인 사람을 뽑겠다’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남자 PB 3명 중에는 안동 권씨가 없었다. 그 부자는 고심 끝에 결국 어머니가 안동 권씨인 한 남자 PB를 선택했다고 유 지점장은 전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