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학원 재추진 논란] “장기 군의관 양성 기관 시급” VS “처우븡장비 개선이 우선”

입력 2011-05-22 18:14


현역병 잇단 사망에 ‘국방의학원’ 설립 공방 재점화

국방의학원 설립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현역병의 잇단 사망 사고로 국회를 중심으로 국방의학원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회는 6월 임시국회에 ‘국방의학원 설립에 관한 법률(국방의학원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국방부 측도 6월 초 국민대토론회를 통해 다각도로 의견을 수렴하고 최종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의학교육협의회 등은 의사인력 과잉과 민간 의료기관과의 불공정 경쟁, 국민 혈세 낭비 등을 유발시킬 우려가 높다며 국방의학원법을 강행 처리할 경우 입법 저지에 적극 나설 것임을 예고 있다.

국방의학원 설립 논란은 2005년 제대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석 달 뒤 사망한 고 노충국씨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가 그 이듬해 ‘군 의무발전 추진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이어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여·야 의원 91명과 공동으로 군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전문인력을 장기 군의관으로 양성하기 위한 국방의학원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지난 3월 국회 공청회를 앞두고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국방부가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 국방위 법안 소위에서 자동 폐기될 운명이었다.

국방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방의학원을 설립하지 않고 기존 의대 정원에서 매년 13명씩 장기 복무 군의관 양성을 위한 별도의 정원을 확보하겠다는 쪽으로 한 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당초 2400억원을 투입해 수도병원을 1000병상 규모의 국방의료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국방의학연구소와 국방의학전문대학원을 별도로 운영, 장기 복무 군의관을 양성할 계획이었다.

국방의학원 졸업생들의 전문의 과정 수련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암센터, 국립재활원, 국립정신병원 등을 전공의 수련 병원으로 지정, 협력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협력병원의 의료진은 국방의학원 임상교수를 겸직하게 된다. 국방부가 추진 중인 국방의학원 정원은 40명이며 이들은 졸업 후 10년간 군의관으로 의무 복무해야 한다.

국방부는 이들 군의관을 발판으로 삼아 국방의료원의 300병상을 일반인에게 개방, 민간 진료도 병행한다고 해 의료계로부터 불공정 경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국방의학원을 설립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군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장기 복무 군의관을 양성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군 병원은 모두 17개로, 총 5020병상을 운영 중이다. 군의관 수는 총 2400여명인데 이 중 2310명(96%)이 3년 미만의 단기 근무 군의관이다. 장기 복무 군의관은 4%(88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환자를 돌보는 진료보다는 행정 관리 분야에 종사한다. 전체 군의관의 25∼50% 이상이 수련기간을 포함해 최소 9년 이상의 장기 복무자인 미국·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 군의 의사 수(100병상당 9.8명)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민간병원의 경우 2008년 말 기준으로 해도 100병상당 의사 수가 17명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민간병원은 새로운 첨단 의료장비를 속속 들여오는 데 반해 군 병원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전문위원 이신호 박사팀은 2009년 1월 6∼19일 수도병원과 양주병원, 벽제병원 등 3개 병원 이용자와 보호자 1589명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이 의료진의 불친절, 성의 부족, 전문성 결여 등과 함께 각종 의료시설 및 장비 노후를 불만 요소로 꼽았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장기 복무 군의관을 양성하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을 새로 만드는 것이 옳은지, 낙후된 군 의료시설을 당장 개선하는 게 시급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인다.

박 의원과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국방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신낙균(민주당), 김정(미래희망연대), 박선영(자유선진당) 의원 등과 함께 국방의학원법 제정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방의학원법안은 여야와 정파를 떠나 젊은 장병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대표적인 민생 법안이자 핵심 안보 법안”이라며 “열악한 군 병원의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과대학 또는 의전원 체제로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의료계는 장기 복무 군의관이 부족한 이유가 처우와 진료 환경이 좋지 않은 것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의학원 설립이 장기 복무 군의관 확보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군 병원 주위 민간병원과의 연계를 통해 군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1∼2차 의료기관으로서 진료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로 활동하는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안덕선 교수는 “국방의학원 설립 및 운영에 들어가는 수천억원의 예산으로 현안 과제로 떠오른 군 의료시설 및 장비 개선과 군의관 처우 개선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의료계 일각에선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암센터 등 국공립병원이 전공의 수련병원 지정으로 임상교수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국방의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박 국립의료원장은 이에 대해 “군 의료서비스를 선진화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일 뿐 교수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