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췌장염 원인, 젊은층 술· 노인은 담석
입력 2011-05-22 17:51
어느날 갑자기 윗배에 칼로 저미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떼굴떼굴 구를 때가 있다. 통증은 등쪽으로 뻗치면서 구역질과 함께 구토가 일어나고 이런 증상은 며칠간 지속되기도 한다. 결국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대부분 응급실로 실려온다. 급성 췌장염에 걸린 환자들의 대표적 증상들이다.
급성 췌장염은 위장의 뒤쪽, 등뼈 바로 앞에 있는 췌장에 갑자기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췌장은 많은 소화 효소를 분비해 음식물 중 특히 지방과 단백질을 소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췌장염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급성 췌장염은 원인을 제거하고 췌장 기능을 회복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만성 췌장염은 췌장의 고유 기능이 파괴돼 정상 회복이 불가능하다.
급성 췌장염은 나이와 상관없이 잘 생기는데 젊은 연령층에서는 특히 술이, 노년층에선 담석이 주범인 것으로 조사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상협 교수팀이 2003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급성 췌장염으로 치료받은 227명을 분석한 결과, 급성 췌장염을 일으킨 원인으로 65세 이상(85명)의 경우 담석이 절반을 넘는 56.5%(48명)를 차지했고 알코올(17.6%), 원인 불명(25.9%) 순이었다. 반면 65세 미만(142명)은 알코올 45.8%(65명), 담석 29.6%, 원인 불명 23.9%로 나타났다.
술을 한번에 폭음하면 알코올 자체의 독성에 의해 췌장 조직이 일시적으로 파괴되면서 통증을 일으킨다. 연말에 급성 췌장염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급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쓸개나 간에서 만들어진 담석이 담도를 타고 내려오다 (담도와 연결된) 췌관을 막으면 췌장액(소화 효소)이 배출되지 않아 급성 췌장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건강검진 등을 통해 몸 안에 담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되도록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교수는 “담낭(쓸개즙 주머니)안에 있는 담석은 놔둬도 당장 별탈은 없지만 췌관과 연결된 담도에 담석이 있으면 큰 것은 담도를 막아 황달을 일으키고, 작은 것은 췌장으로 흘러들어가 급성 췌장염을 일으키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층의 경우 알코올로 인한 경증 급성 췌장염이 대부분이라 약물 치료를 하면 수일 내에 회복되는 게 일반적이다. 담석으로 인한 급성 췌장염일 경우 내시경을 집어넣어 담도와 췌관에 있는 담석을 제거하는 시술(ERCP)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령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ERCP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게 그동안 의료계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상협 교수팀이 227명의 급성 췌장염 환자 중 담석 때문에 ERCP를 시술받은 91명을 조사한 결과, 65세 이상 환자 그룹이 65세 미만 환자 그룹에 비해 병의 중증도는 배 가량 높았지만 평균 입원 기간은 각각 10.3일, 11일로 별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65세 이상 고령이라도 24시간 안에 ERCP를 시술 받으면 젊은층과 다름없는 치료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경증 급성 췌장염의 사망률은 대개 1∼2%에 불과하지만 췌장 괴사와 감염, 전신 합병증을 동반하는 중증일 경우 사망률이 40%까지 증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 노인 급성 췌장염 환자의 사망률이 3.5%로 나타나 ERCP 같은 적극적인 치료로 회복 기간은 물론 사망률 까지 낮출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팀은 이같은 연구 결과를 노인병 분야 국제 학술지 ‘노인 및 노인병학 아카이브’ 최신호에 발표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