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최경주와 벤 호건

입력 2011-05-22 17:58

미국 프로골프(PGA) 통산 우승 랭킹 4위(64승)의 ‘전설’ 벤 호건은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가난한 소작농 아들이었다. 10살 때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동네 골프장 캐디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0대 후반에 프로가 됐고 오랜 동안 무명이었다. 최경주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축구와 역도를 하다 골프채를 잡았고 선수생활과 레슨프로를 병행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호건의 키는 171㎝, 몸무게는 69㎏였고 골프 재능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1938년 28살 때 첫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 골프계는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고 했다. 역도선수를 거치며 허리와 골반을 다쳤던 최경주 역시 173㎝의 단신으로, 32세에 PGA 첫 우승을 기록했다. 2002년 미국 골프계 반응은 “저 동양인은 누구더라”하는 정도였다.

호건은 46년부터 거의 매년 10승 이상을 올리며 53년에는 US오픈과 마스터스, 브리티시오픈을 한꺼번에 우승했다. 역대 두 번째로 4대 메이저를 다 우승하는 ‘통산 그랜드슬럼’도 달성했다. 그에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란 평이 붙었다. 최경주는 2002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PGA 8승을 거뒀다. 미국 골프 평론가들은 “실력과 정신력을 지닌 정상급 선수”라고 평한다.

두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골프계를 평정한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같은 선수는 아니다. 호건은 거의 매일 8시간씩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야구스윙처럼 볼을 치는 ‘클래식 스윙’을 뒤엎고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휘두르는 ‘모던 스윙’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수없이 연습한 그의 스윙이 현대 골프의 시금석이 된 셈이다.

지난 15일 최경주는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3년의 슬럼프 동안 쉬지 않고 연습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가난과 불운, 신체적 핸디캡, 재능의 부족…. 벤 호건과 최경주는 이 모두를 똑같이 이겨냈다. 그들에게 고난은 “신이 내린 감당할 만한 것들”일 뿐이었다.

최경주가 호건만큼 우승하진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알고, 3일을 연습하지 않으면 온 세계가 다 안다”는 호건의 명언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골퍼로는 기록될 것이다. 또 차갑고 오만했던 호건과 달리, 언제나 겸손하고 친절하다는 점에서 벽안의 미국 팬들에게조차 ‘진짜 사랑받는 프로 골프선수’로도 남을 것이다.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