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재정 위기의 정치경제학

입력 2011-05-22 17:59


지난해 시작된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는 IMF와 유럽중앙은행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진정세로 돌아섰으나 올들어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최근 포르투갈이 유럽연합과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고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가 다시 높아지는 것은 유럽의 재정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도 연방정부와 주정부 모두 총체적인 재정위기다. 주정부들의 재정위기는 경찰과 소방 예산까지 감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연방정부는 재정적자 확대와 더불어 부채가 법정 상한인 14조3000억 달러에 도달하여 이를 인상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이 재정위기를 겪는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있다. 이로 인한 경기침체는 세수 감소와 더불어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지출의 급증을 가져왔고 이는 고스란히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재정위기에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지출과 방만한 재정운용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에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유럽 국가들의 특징인 높은 복지지출 비중은 공공부문의 비대화에 따른 방만한 재정운용과 맞물려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적 충격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재정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상대적으로 복지지출 비중이 낮은 미국을 보자. 미국의 대표적인 복지제도에는 사회보장연금, 노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인 메디케어, 메디케이드가 있다. 미국 의회예산처 추정에 따르면 이런 복지 관련 지출과 국채에 대한 이자지불 비용만으로도 2025년부터 연방정부의 재정수입을 초과하게 되고 2050년에는 이런 지출이 재정수입의 2배에 이르게 된다. 또한 공공연금의 부실화는 주정부의 재정문제를 악화시키는 대표적 요인이다. 복지 혜택이 유럽보다 적은 미국도 복지지출은 재정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다.

역사적으로 패권 국가는 시기별로 달랐지만 16세기에는 스페인이었다. 1557, 1560, 1575, 1596, 1607, 1627. 이 숫자들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반에 스페인의 채무불이행이 나타났던 연도들이다. 이렇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재정위기는 스페인이 패권 국가의 지위에서 물러나는 단초가 되었다. 당시 스페인이 반복적인 재정위기를 겪은 원인은 건전성에 대한 유인이 없었던 스페인 왕정을 중심으로 한 재정시스템에 있었다.

플로렌스와 같은 중세의 이탈리아 도시 국가, 스페인의 뒤를 이어 패권국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 등은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낮은 건전한 재정시스템을 바탕으로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 국가들은 국가의 재정수입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지출에 대해서도 통제할 유인이 있는 재정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부도의 위험이 낮았던 것이다. 반면 스페인의 절대왕정은 재정수입을 지방 도시들에 의존하면서 지출 증대에 따른 국가 부도의 위험을 회피할 유인이 별로 없었다.

절대왕정과 복지지출을 재정위기의 구조적 원인으로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지지출과 혜택의 범위가 확대될수록 재정수입에 기여하는 세력과 지출을 주도하는 세력의 괴리는 커진다. 현대 국가의 특징인 누진세제로 인해 재정수입은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 부담하게 되어 이러한 괴리는 복지지출 증대와 더불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출에 대해 시스템적으로 통제할 유인이 약하다는 점은 절대왕정의 경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복지의 필요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복지가 모든 국민이 향유해야 할 보편적인 권리는 아니다. 복지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고 질타하며 무상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선진국 재정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간과한 것이다. 복지제도의 확대, 보편적 복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진국의 장점이 아니라 반복적인 재정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뇌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원근 한국경제硏 연구조정실장